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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 포기할 수 없는 유혹, 군것질

[세대공감] 포기할 수 없는 유혹, 군것질

입력 2010-09-15 00:00
업데이트 2010-09-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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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밥도 못 먹는데 군것질이 웬말이냐며 허전한 입안을 콩 두어 알과 생쌀로 달래야 했다. 자꾸 씹으면 고소한 맛이 난다며 좋아했다. 그러다 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큰 맘먹고 사다주신 ‘눈깔사탕’이라도 손에 받아든 날에는 뛸듯이 기뻐하며 사탕을 잘게 쪼개 아껴 먹기도 했다. 시대가 달라져 군것질거리가 넘쳐난다. 밥 먹고 난 뒤 커피와 케이크는 필수라는 사람들, 오후 3~4시를 간식타임으로 정해두고 오늘은 어떤 군것질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 끼니는 대충 먹어도 달달한 디저트를 포기할 수 없는 군것질 마니아들이 예전보다 많아졌다. 종류는 달라도 포기할 수 없는 유혹, 군것질에 대한 서로 다른 추억을 들어봤다.

윤샘이나·김양진기자 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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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요즘은 도처에 군것질거리가 널려 있지만 30~40년 전엔 달랐다. 부모님들은 5일에 한 번 열리는 장에서 물건을 팔아 만든 돈으로 자식들 줄 군것질거리를 사오곤 했다. 군것질거리라 해봐야 눈깔사탕이며 엿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장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른들이 안겨주는 간식거리를 받아 들고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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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분당에 사는 김수양(49)씨는 군것질 하면 장날 할머니가 나물을 팔아 사다 주시곤 했던 엿가락이 생각난다고 했다. 아침 일찍 장터에 나가시는 할머니를 보며 김씨는 마루 턱에 나와 “나중에 맛있는 거 꼭 사와야 돼.”라며 몇 차례나 다짐을 받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김씨에게 할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책상에 꼭 붙어 공부할 것’을 조건으로 내거셨다. 학교에 다녀와서도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은 날은 목이 빠져라 동네 어귀만 내다보며 동구 밖 들길을 건너 오실 할머니를 기다렸다. 약속한 공부는 뒷전으로 제쳐두고 할머니 손에 들려올 군것질거리만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다 늦어지는 할머니를 기다리지 못하고 잠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땐 아침 잠자리에서 머리맡에 놓인 엿봉지를 발견하고는 깜짝선물이라도 받은 양 기뻐했다. 김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여져 있는 엿을 보고 좋아하며 아침부터 다디단 엿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 즐겼던 군것질거리를 요즘엔 별미로 즐기기도 한다. 당시에는 배가 고파 ‘맛도 없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먹을거리에 추억까지 더해 별미로 즐기기도 한다.

강원 강릉에 사는 오창수(58)씨는 씹으면 씹을수록 쫀득쫀득해지던 ‘밀껌’이 군것질거리로 최고였다고 돌이켰다. 6월 보릿고개 막바지, 밭에 누렇게 밀이 익어가면 아이들은 밭두렁에서 익어가는 밀 목을 따 손바닥으로 비벼 알곡을 추린 뒤 질겅질겅 씹으며 허기를 견디곤 했다. 지금은 밀밭이 거의 사라져 다시 해보기도 어려운 풍경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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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서리한 콩을 구워 먹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저물녘, 동네 친구들과 소를 몰고 돌아오다가 길가 콩밭에서 잽싸게 콩 대를 한 웅큼 후려다가 모닥불을 지펴 구워 먹곤 했다. 살짝 구운 깍지를 벗기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을 호호 불어서 먹을 수 있었다. 검게 그을린 깍지를 벗기던 손으로 땀을 닦고 코를 비비다 보면 어느새 얼굴은 검댕 칠갑이 되었고, 그런 모습들을 쳐다보며 깔깔 웃느라 날이 저무는 것도 몰랐다.

여름이 되면 아이들은 대바구니에 호미를 챙겨 들고 바다 갯벌에 나가 조개를 주워 모았다. 바지런히 호미로 긁어대면 어렵잖게 두어 사발의 조개를 캘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마당에 멍석을 펴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여름 별미로 조개칼국수를 즐겼다. 칼칼한 국물에 풋풋한 애호박이 들어간 칼국수와 함께 찐감자를 곁들이면 더위에 지친 여름밤이 넉넉하고 안온했다.

초가을 무렵, 감나무 밑에 뒹구는 맛이 덜 든 땡감을 주워 먹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오씨의 어머니는 아직 덜 익어 떫기만 한 감을 먹는다며 나무라셨지만 텁텁한 대로 허기는 면할 수 있었고, 더러는 그렇게 주워 모은 감을 된장 속에 묻거나 소금물이 담긴 독에 며칠씩 넣어뒀다 떫은 맛이 가시면 꺼내 먹곤 했다. 오씨는 “지금도 칼국수는 많지만 예전에 흔하디 흔했던 우리 밀로 만든 칼국수보다는 못하다.”면서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되찾을 수 없는 음식들이 돼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요샌 이래요

고등학교 2학년인 김미희(17)양은 교문 앞 포장마차에서 파는 일명 ‘마약 토스트’에 푹 빠졌다. 구운 식빵 두 장 사이에 노란 치즈 한 장 달랑 들어간 간단한 음식이지만 김양네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토스트에 마약을 넣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김양은 “엄마가 아침에 밥을 먹고 가라고 해도 뿌리치고 일부러 토스트를 사 먹고 등교할 정도”라면서 “학교에 일찍 도착한 다른 친구들이 들어올 때 토스트를 사다 달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고 말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등굣길에 토스트를 먹지 못한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이 ‘마약 토스트’를 찾아 담장을 넘는 위험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등교시간이 지난 후에는 교문을 닫는 학교규칙상 쉬는 시간에도 학교 밖을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담장을 넘다 선생님께 걸리기라도 하면 벌점을 받거나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지만 학생들은 결코 마약 토스트를 포기하지 못한다.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는 “‘마약 토스트’를 매점에서 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문 바로 앞에 있는 토스트집까지는 교내로 간주하도록 교칙을 개정하자.”는 등 황당한 주장을 하며 깔깔대곤 한다고 전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윤규현(28)씨도 학교 앞 명물간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윤씨가 다녔던 서울 한남동의 한 중학교 앞에는 모든 메뉴를 1000원에 파는 일명 ‘1000원 분식점’이 있었다. 라면, 쫄면, 떡볶이, 김밥 등 다양한 메뉴를 파는 분식점이었는데, 모든 메뉴가 통일된 가격 단돈 1000원이었다. 점심을 먹고도 금세 배가 고파지는 학창시절, 윤씨와 친구들은 하루에도 2~3번씩 그곳을 찾았다. 수업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 들러 라면 한 그릇씩을 비우고는 다시 학원가는 길에 찾아가 쫄면을 시켜 먹는 식이었다. 다른 분식점에 비해 절반 수준의 가격이라 부담이 없었다. 워낙 가격이 싸고 인기가 좋아 한때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를 가져온다.”는 등의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1000원 분식점의 인기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윤씨는 “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 분식점은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면서 “물가가 많이 올라 요새는 모든 메뉴가 2000~3000원대지만 여전히 맛이 있어 집에 가는 길에 종종 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희재(26)씨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학교 앞 문방구표 군것질거리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씨가 초등학생이던 10여년 전, 학교 앞 문방구에는 온갖 군것질거리가 다 있었다. 이씨와 친구들은 문방구에 학용품을 사러 갈 때보다 그곳에서 파는 컵떡볶이를 먹으러 갈 때가 더 많았다. 문방구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설탕을 가득 넣어 만든 달달하고 맵싸한 떡볶이와 떡꼬치, 순대꼬치, 얼린 음료수 등 어린 학생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군것질거리들이 가득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학교가 끝나면 문방구에서 간식을 사먹는 아들에게 “불량식품이니 사먹지 말라.”고 말하곤 했지만 이씨는 “당시에 사먹었던 문방구표 간식이 어머니가 해주시는 간식보다 훨씬 맛있었다.”고 말했다. 특별히 맛있는 떡볶이도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문방구 앞에 앉아 종이컵에 담긴 빨간 떡을 긴 꼬치로 찍어 먹는 재미가 동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어떤 친구는 종이컵 대신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긴 떡볶이를 모서리에 낸 구멍으로 쏙쏙 빼먹기도 했다. 이씨는 “어머니 말씀대로 불량식품일 수도 있지만 그걸 먹고 자라서 지금 이렇게 튼튼한 것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과거와 달리 주위에서 쉽게 군것질거리를 구할 수 있는 요즘이지만, 대학생 이지원(21·여)씨는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외국산 간식을 즐겨 찾는 ‘희귀 군것질거리 마니아’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식품코너에 가면 수입식품 코너가 있지만, 이곳의 한정된 상품은 이씨의 군것질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이씨는 아직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미국산 초콜릿잼, 일본에서만 파는 쿠키 등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곤 한다. 장에 가신 할머니 쌈지에 담겨 오는 군것질거리를 기다리듯 이씨는 주문한 간식 택배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 이씨의 어머니는 “집에도 먹을거리가 이렇게나 많은데 엉뚱한 데 돈을 쓰느냐.”며 핀잔을 주지만 이씨는 오늘도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군것질거리를 탐색한다. 이씨는 “한국에서 팔지 않는 간식을 찾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고 먹어보기 위한 호기심이 더 크다.”면서 “군것질거리를 찾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일종의 재미인 만큼 이제는 하나의 취미가 됐다.”고 말했다.
2010-09-1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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