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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0]= ‘식성 회귀’? …다시 보는 고구마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0]= ‘식성 회귀’? …다시 보는 고구마

입력 2015-10-19 14:39
업데이트 2016-06-1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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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커피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직장에 출근해서도, 쉬는 날 집에 있어도 커피는 따라 다닙니다. 서울 광화문 거리의 풍경은 이런 커피 문화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라도 한잔 마시려면 긴 줄 속에 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게 커피를 받아들어도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도리 없이 커피를 들고 길거리로 나서거나 제 자리가 있는 사무실로 들어와야 합니다. ‘커피점도 서비스업인데, 넉넉하게 앉을 자리도 마련해 놓지 않고 몰려드는 대로 저렇게 팔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불만이 없지 않지만, 점주도 아닌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그런 얘기 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하고, 그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듯 하니 아예 입 닫고 주는 대로 받아 마실 뿐이지요. 이게 ‘식사는 선택, 커피는 필수’인 세상의 달라진 풍경 한 편입니다.
 
 ●‘식사는 선택, 커피는 필수’
 아무튼, 어느 새 커피가 우리 일상 속 깊게 자리를 잡고 말았는데, 뭐가 뭔지 알지도 못할 다양한 메뉴 중에 고구마라떼가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저게 다 뭐야?’ 싶어 한 잔 시켜서 먹어봤는데, 이건 시쳇말로 ‘개떡 갖고 여시 꼬으는’ 수준이랄까요. 모르겠습니다만, 필자의 기대치가 높았던 것일까요. 저는 그걸 마시면서 고구마의 맛을 그다지 짙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그 다음부터는 그걸 시켜 마시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고구마라떼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고구마까지 팔려가는 일인가 싶어 내심 실망했지만, 생경한 말 투성이인 메뉴판에 비집고 앉은 ‘고구마’라는 익숙한 말이 반갑고, 그 고구마 덕분에 살아남았던 속살 아리고도 짠한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가을 지나 겨울로 접어드는 지금쯤이면 농투산이들에게는 고구마가 참 든든한 위안이었지요. 봄부터 ‘뼈빠져라’ 쌀농사라고 지어 봐야 이것 떼고, 저것 제하고 나면 한 겨울 반섞이 몫도 안 되었던 터에 봄농사로 거둔 보릿자루마저 비어가면 믿을 거라곤 수숫대나 대나무를 엮어 만든 두대 속 고구마 밖에 없었습니다.
 믿기 어렵다고요. 그런 세상을 헤쳐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하루 세 끼를 숫제 삶은 고구마로 연명한 사람도 적지 않았고, 세 끼는 아니더라도 점심이나 저녁 한 끼 정도는 삶은 고구마에 배추김치 척척 찢어얹어 끼니 대신 먹고 살았던 사람들이 태반이었으니까요.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입안에서 미끈덕 땍알거리는 꽁보리밥이 싫어지면 고구마밥으로 입맛을 돋웠고, 누룩에 개어서 잘 익혀낸 걸쭉한 고구마술은 달고도 근기가 있어 한두 사발이면 어지간한 보리밥과 견줘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보물단지라니까요”
 이런 마당에 고구마의 영양 성분을 말하는 건 좀 그렇겠지요. 예전에야 뭐든 먹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어서 언감생심 영양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따져보면, 고구마에는 양질의 식이섬유가 많아 요새 걱정이 늘어가는 대장암이나 비만, 변비 걱정 덜어내기 마춤이어서 숫제 이걸로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드는 사람이 적지 않고, 인·칼륨·레티놀과 엽산·비타민C·베타카로틴 등 알만 한 사람이 들으면 ‘보물단지’라고 여길만 한 미량 영양소도 듬뿍 들어 있지요.
 고구마의 이런 위력을 안다면, 마트 진열대에 고구마가 보이기 시작하는 지금부터 고구마로 삼시세끼 끼니를 떼워도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만, 세상이 바뀌어 요새는 그게 예전처럼 싸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농부들이 고구마 농사로 손에 목돈 쥐지는 않습니다. 중간 상인들이 턱없는 이문을 붙이는 탓이겠지요. 하기야 예전에 고구마 한 멱다리(멱서리)를 목이 삐꺽이게 이고 나가 장터에서 돈바꿔 봐야 짜장면 한 그릇 값 밖에 안 되었던 시절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요.
 예전에야 겨울 한 철을 날 먹거리가 마땅찮아 얼음 든 무라도 삶아먹었을 터수에 고구마 정도면 이것, 저것 따질 것도 없이 감지덕지하지 했었고, 영양분 만큼이나 장점도 많아 활용도도 높았습니다.
 가을이면 시골 마을에서 이리 저리 채이는 게 고구마였지만, 천성이 워낙 수더분해 삶아먹다 싫증이 나면 구워서 먹고, 구워먹는 일이 귀찮으면 날로 먹거나 얇게 삐져서 말린 뺏대기로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잎줄기는 뜯어 말리면 맛있는 나무새가 되고, 질긴 줄기는 겨울철 소의 여물이 되니, 땅에서 자라는 것 중에 이렇게 ‘꼭딱스럽게’ 먹어치우고 활용할 수 있는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고구마로 끼니를 삼고 살았던 사람들이 처지가 바뀌자 “고구마 냄새도 맡기 싫다”며 진저리를 치지만, 이것도 다 사람의 일 아니겠습니까. 사실, 나중에 먹고 살만 해진 뒤 고구마 ‘고’자도 듣기 싫다며 손사레를 치는 사람이 적지 않지요.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그걸 심심파적 삼아 별미로 먹었던 것도 아니고, 조석으로 배를 채워 더러는 “원없이 밥 한번 먹어보고 싶다”거나 “사는 게 왜 이런가” 싶은 생각에 눈물바람도 했을 터이니 배 고픈 시절에 대한 회한 때문에라도 손사레 칠만 하지요. 아, 세상에 없는 산해진미라도 그 시절 고구마 먹듯 한다면 누군들 안 질리겠습니까.
 그랬던 고구마의 위력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꿈에서라도 ‘고깃국에 이밥 먹는’ 게 소원이었지만 그 고기와 이밥이 실은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그렇게 배 채우고 사는 호강이 ‘꿈에서라도 바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내 드러났지요. 고기에 붙어다니기 마련인 기름(지방)은 비만에다 고지혈증을 유발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 숱한 질병을 낳고, 이밥의 주성분인 탄수화물 역시 지나치면 고기 못지 않은 해악을 끼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니까요.

고구마. 서울신문 DB
고구마. 서울신문 DB
 ●‘식성의 회귀’ 다시 보는 고구마
 그렇게 보면 참으로 절묘하고 무서운 ‘식성의 회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 맛이 그 맛’은 아니지만, 서구식 커피점에서 꿋꿋하게 ‘우리 것’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두루뭉술 멍텅구리처럼 생긴 고구마를 다시 생각합니다.
 비록 상업성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있지만, 고구마라떼는 어떤 문화도 결국 대중의 유전자가 지배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단면 같아서 괜히 좋고, 신기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좋네, 싫네 해도 우리의 유전자에는 고구마에 대한 향수가 각인돼 있는 것만 같고, 그 지긋지긋한 고구마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산의 삶을 살았던 우리가 종국에 찾아낸 해답이 고구마라니 이런 아이러니한 회귀가 흔하겠습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예전의 고구마가 구황(救荒)의 대명사였다면 이 시대에 고구마는 구만(救滿)의 방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고구마로 부족한 것을 채웠지만, 이제는 너무 차고 넘쳐 숨 가쁜 영양이나 먹거리를 고구마로 덜어내 좀 홀가분하게 살자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예전처럼 줄창 고구마만 먹고 살자는 권유는 아니니 놀라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것까지는 없는 일이고, 권컨대 삶든, 굽든 하루 한끼 정도 고구마로 배를 채우는 절제와 겸양을 가질 수 있다면 머잖아 그것이 건강에 큰 복음(福音)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고기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는 것은 물론 쌀밥의 해악까지 극복할 수 있으니 그만한 대안도 흔치 않지요.
 모든 사람들이 건강이라는 화두를 염두에 새기고 사는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건강이 가만 있어도 얻어지는 건 아닙니다. 한 가지라도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고구마를 먹었더니 방귀가 ‘없는 집 밥그릇 굵는 소리보다 더 요란하다’고요. 힘차게 밀고 나오는 그 방귀야말로 고구마와 몸이 만들어내는 생리적 환호성입니다. 그 방귀가 이상하지 않고 반갑게 여겨져야 당신의 삶도 건강합니다. 이 가을, 고구마 많이 드시고, 뿡뿡 밀고 나오는 방귀 힘차게 뀌시기 바랍니다.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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