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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11>백마 화사랑, 녹슨 기차와의 추억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11>백마 화사랑, 녹슨 기차와의 추억

입력 2016-03-18 17:48
업데이트 2016-03-1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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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 해방구로 덜컹덜컹 기차는 떠나네

신촌역에서 늙은 철마를 타고 다다른 곳
주말이면 그림 발표회, 시낭송회, 학술세미나…

1980년대 기차 신촌역 바로 옆 낡은 건물에 ‘녹슨 기차와의 추억’이라는 허름한 술집이 있었다. 80년대 술집이란 게 대개 그랬지만 생맥주와 노가리, 땅콩 등을 팔았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그 집은 신촌 일대의 히피들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 시절 청춘들의 해방구쯤으로 여겨지던 경의선 백마역의 카페 화사랑이 유명해지면서 그 술집은 사람들에게 꽤 알려지게 된다. 당시 연인들의 필수 탐방 코스로 유명했던 화사랑에 가려면 신촌역에서 교외선을 타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화사랑은 어느 젊은 화가가 신촌에서 백마로 옮겨간 작업실이었다. 이후 그곳으로 친구들이 모여들어 이야기판, 술판, 노래판이 펼쳐지다가 급기야 ‘화사랑’이라는 술집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이미 입소문을 탄 탓에 당시 화사랑 인근에는 ‘썩은 사과’ 등등 요상한 이름의 크고 작은 카페, 막걸리집 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신촌역을 출발해 문산으로 향하는 경의선 교외선 기차는 수색을 지나고 능곡과 화전을 지나 한 시간이면 백마역에 닿게 된다.

방배동 카페골목, 동부이촌동 카페촌을 거쳐 신사동 가로수길, 강남역, 홍대입구, 이태원 등등 지금은 청춘들의 아지트가 다양하지만 80년대는 대학가를 제외하고는 화사랑 일대가 단연 인기였다. 기록은 70년대 말 서양화가 김원갑씨가 작업실을 물색하던 중 우연히 찾은 백마역 인근의 폐농가를 아틀리에로 삼은 것이 시초라고 전한다. 홍대, 중앙대 미대 출신 작가들이 주축을 이뤘다. 사람들이 몰리며 아르바이트하는 청춘들도 하나둘 몰려들게 된다. 그 속에 우리가 한때 사랑했던 한 사람이 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때로는 어깨가 들썩거리고 때로는 가슴이 촉촉해진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 ‘라구요’의 강산에다. 지금처럼 애매하게 변하기 이전 시절의 그는 정말 우리가 좋아했던 가수다. 지방에서 올라온 그는 적응을 잘 못해 경희대 한의대를 그만두고 화사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홀 서빙도 하면서 같이 어울려서 노래하고 지냈다. 언젠가 그는 화사랑이 자기 음악의 모태라고 밝힌 바 있다. 나도 그 시절 꽤 많이 화사랑을 찾았지만 유명해지기 전 그의 모습을 기억하진 못한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마르고 유난히 노래를 잘 부르던 청년이 강산에가 아니었던가 추측할 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작고한 시인 김소진도 단골로 기억된다. 그랬다. 화사랑 일대는 지금의 홍대입구였다. 주말이면 그림 발표회가 열렸고 대학이 많지 않던 시절 이대, 연대 합동 시낭송회도 열렸다. 심지어 학술 세미나까지 열렸다는 기록도 있으니 그 당시 이 일대가 얼마나 명소인지 짐작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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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1980년대 청춘들의 추억 속에 새겨져 있을 경의선 백마역 옆 카페 ‘화사랑’의 전경. 통나무 흙벽으로 지어진 어느 젊은 화가 부부의 아틀리에였건만 아베크족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카페가 되고, 술집이 되고, 급기야 80년대를 관통하는 낭만공간으로 승화(?)된 곳이다. 현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신촌역 옛 역사(驛舍)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곳에서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고 백마로, 장흥으로, 강촌으로 달렸던 중·장년 세대가 빛났던 그 시절 추억을 완강히 부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신문DB
지금도 1980년대 청춘들의 추억 속에 새겨져 있을 경의선 백마역 옆 카페 ‘화사랑’의 전경. 통나무 흙벽으로 지어진 어느 젊은 화가 부부의 아틀리에였건만 아베크족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카페가 되고, 술집이 되고, 급기야 80년대를 관통하는 낭만공간으로 승화(?)된 곳이다. 현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신촌역 옛 역사(驛舍)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곳에서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고 백마로, 장흥으로, 강촌으로 달렸던 중·장년 세대가 빛났던 그 시절 추억을 완강히 부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신문DB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지면 곤란하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한 피사로나 모네의 그림 정도를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녹음이 짙은 계곡도,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구릉도 없다. 아베크족들이 사랑을 속삭일 최소한의 산책로나 욕망을 훔칠 만한 은폐 공간도 없다. 군데군데 물푸레나무가 무성하고 보리밭들이 눈에 띄지만 냄새나는 축사, 낡은 농가들이 전부인 소박한 시골 동네다. 풍경면에서 본다면 기대하고 찾았던 청춘들의 실망은 엄청났다. 다만 기차가 워낙 뜸하게 다니다 보니 선로 자갈길을 자박자박 소리 내어 걷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 정도였다. 그러나 교차점이 없는 평행 선로를 오래 걸으면 헤어지게 된다는 속설에 화들짝 놀라 철길 걷기를 그만두는 커플도 많았다. 그래서 화사랑에 가면 술 마시는 것 말고 달리 할 게 없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왔다.

이런 이유로 술집 ‘녹슨 기차와의 추억’은 대개 화사랑 일대 술집을 다녀와서 무언가 허전하고 아쉽다며 다시 한잔하는 분위기 탓에 구석구석 꽥꽥거리며 토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유난히 만취한 사람들이 몰렸던 조금은 괴이한 술집이었다. 더구나 자정이 가까워지면 고양의 열차 차고지로 돌아가는 지친 철마들의 구슬픈 기적소리가 이어져 긴 겨울밤에는 탁자에 머리를 처박고 흐느끼는 취객들도 많았다. 요즘과 달리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기차는 청춘들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기대게 되는 좋은 탈출의 수단이었다.

80년대의 청춘은 낡은 기차와 함께했다. 그 중심에 비둘기호가 있다. 역이란 역은 모두 멈춰 서는 완행열차다. 속도가 매우 느려 간혹 날쌘 청년들은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거나 올라타는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이 열차는 그 시절 더 고급인 통일호나 새마을호를 만나면 그 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역에 멈춰 서서 한참 동안 기다렸다. 싼 운임 내고 탄 설움을 톡톡히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느리고 허름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 열차가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열차에는 인근 도시 학교로 통학하던 여고생의 설렘과 재잘거림이 담겨 있었고 삶은 달걀과 푸성귀를 담은 광주리를 이고 아들딸 집으로 가던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있었으며 오일장에 내다 팔 물건들을 담은 봇짐을 들고 새벽 첫차를 탄 장꾼들이 있었다. 비둘기호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 시절 우리 이웃들이었다. 그러나 비둘기호는 경영논리에 의해 퇴출되었고 통일호마저 없어졌다. 기술발전과 경제논리가 기차간의 낯익은 풍경을 바꿔 놓았다.

그 옛날의 느린 기차를 타게 되면 생각나는 가수가 있다. 아그네스 발차다. 나나 무스쿠리와 함께 그리스가 낳은 세계적인 가수다. 아그네스 발차는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 그야말로 독보적인 메조 소프라노다. 메조의 경우 소프라노의 그늘에 가려 애당초 유명해지기 쉽지 않은 영역이다. 그러나 놀랄 만한 가창력과 매력적인 중저음은 그녀의 명성을 공고히 하기에 충분했다. 아그네스 발차가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것은 신경숙의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책의 서문에 발차의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등장한다. 기차를 타고 전장으로 떠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그린 노래는 멜랑콜리한 가사와 조화를 이루며 그녀를 세계인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연전에 제작된 한국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도 그녀의 노래가 등장하면서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꽤 알려졌다.

세월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사오 년 전에는 도시형 고속 열차인 청춘열차가 생기면서 경춘선 무궁화호도 사라졌다. 경의선 교외선과 더불어 청춘의 무질서가 허용되었던 마지막 해방구 열차가 사라진 것이다. 80년대 경춘선은 여객보다는 젊음을 실어 나르던 열차였다. 90년대 초 일산 신도시 개발로 화사랑 시대가 사라진 데 이어 그 옛날의 경춘선까지 사라졌다고 하니 강촌, 대성리의 추억이 한꺼번에 날아간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다. 80년대의 청춘은 녹슨 기차들과 함께 멀어져 갔다. 생애 최고의 화려한 날들이 과거에만 있다면 곤란하지만 그래도 삼등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다니던 그 시절이 좋았다. 80년대는 지금의 기성세대가 회고할 수 있는 가장 감미로운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오래 머물 곳은 아니라는 말을 우리는 애써 무시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봄 오는 길목, 교외선 기차를 타고 백마로 향하던 스물 몇 살의 내가 오늘 문득 그립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윤동주의 시 ‘사랑스런 추억’에서)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언론학·매체경영) yule21@empas.com
2016-03-1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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