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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44] 정말 소금에도 ‘중독’이 될까 (상)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44] 정말 소금에도 ‘중독’이 될까 (상)

입력 2016-05-29 10:44
업데이트 2016-06-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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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모르지만, 소금을 한자로는 ‘素金’이라고 쓰지 않을까요. ‘하얀 금’이라는 뜻이 담겼지요. 지금이야 소금이 흔하고 싸지만 예전에는 금에 견줄만큼 귀했습니다. 그래서 소금에 대한 모든 권한을 국가가 장악했습니다. 돈이 되었으니까요.

경기도 화성군에 위치한 염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경기도 화성군에 위치한 염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중국의 진시황은 소금 전매제를 도입해 국부의 근간으로 삼았고, 한나라 때도 북쪽 흉노족과 싸울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소금 전매제를 실시했습니다. ‘귀한 소금’의 역사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습니다. 돈이 되기도 했지만,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중세 유럽에서는 소금 확보가 전쟁 준비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군인들의 주요 식량인 대구와 청어 등을 대량으로 확보해 절여서 보관하려면 많은 소금이 필요했습니다. 혁명기의 프랑스 귀족들은 식탁 위에 커다란 소금 그릇을 둬서 필요한 사람들이 조금씩 덜어가도록 했답니다. 귀한 소금을 나눔으로써 관용의 가치를 실천하려고 한 것이지요.

소금에 이런 거대한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필자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곳에서는 김장할 배추와 무를 바닷물에 담가 간을 하기도 했고, 갯가에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바닷물을 달여 소금을 구워내던 기억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의 기행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히말라야의 야생 양들이 사람이 사는 마을로 꾸역꾸역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불교를 믿는 그곳에서는 야생 양들이 인가 근처로 내려와도 잡거나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데, 그걸 믿고 내려온 양들이 맨땅을 핥아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알고보니 양들이 핥는 건 바로 돌처럼 굳은 암염이었습니다. 주기적으로 내려와 암염을 핥아 먹으면서 부족한 미네랄을 보충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소금은 우리의 문명, 더 본질적으로는 생존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 소금이 문제입니다. 너무 많이 섭취해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낳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우리 국민들의 상당수가 소금 중독상태에 빠져 있다고 말합니다.

●“소금,얼마나 먹길래”

소금의 과다 섭취가 어디 우리만의 문제이겠습니까. 가끔 외국에 나가 현지식을 먹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피자나 베이컨 등이 너무 짜서이지요.

이렇듯 소금의 가장 중요한 효용은 음식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절일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다음은 간을 맞추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소금 섭취를 피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 보니 짠 맛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사람의 입맛을 한사코 익숙한 것을 찾습니다. 단 맛에 빠지면 단 것을 찾고, 매운 맛에 길들면 매운 맛을 찾는 식으로 소금 맛에 익숙해지면 싱거운 음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필자처럼 30년이 넘도록 직장 주변에서 밥을 사먹어 온 사람들이 식생활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은 ‘짜고, 달고, 매운’ 이른바 ‘장사맛’에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휴일날 집에서 먹는 음식이 입맛에 안 맞기 일쑤고, 그래서 더러는 음식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집에서 만드는 음식이 몸에는 좋을 터이지만 식당 음식처럼 맵고, 짜고, 달게 만들어져 고객의 기호에 영합하지 않으니까요.

소금은 흔히 염화나트륨이라고도 합니다. 화학적으로는 염소와 나트륨의 결합체이지요. 이 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경계하는 성분은 나트륨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의 1일 나트륨 섭취권장량을 2000mg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소금 양으로 바꾸면 약 5g에 해당합니다. 소금의 40%가 나트륨이니 어차피 같은 양인데, 나트륨보다는 소금량 표기가 훨씬 현실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국민은 나트륨을 얼마나 섭취할까요. 질병관리본부의 2013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섭취 권장량 대비 남성은 333%, 여성은 241%로 집계됩니다. 100%가 기준치이니 남성은 233%가 초과 섭취량이고, 여성은 141%가 초과 섭취량입니다.

식약처와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일 평균 소금 섭취량은 약 12.5g인데, 이를 나트륨으로 환산하면 무려 5000mg이나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보통의 한국 성인의 식생활을 추적해 볼까요.

회사원 P씨는 아침에 빵 한 조각과 우유 한 잔, 그리고 계란 프라이 하나를 먹습니다. 나트륨 함량은 빵 110∼130mg, 우유 115∼120mg, 계란 프라이 180∼200mg 정도입니다. 점심으로 흔히 먹는 김치찌개에는 2000mg 가량의 나트륨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다 부수적으로 먹는 김치나 나물, 조림류의 나트륨 양을 따지면 점심 한 끼에 쉽게 3000mg이 넘는 나트륨을 섭취하게 됩니다. 점심 후에 먹는 커피에도 당연히 나트륨이 들어 있습니다. 캐러멜마끼아또를 마셨다면 170∼180mg의 나트륨을 섭취한 것이고, 쿠키 한 조각을 곁들였다면 여기에 200mg 정도를 더해야 합니다. 저녁 식사에도 점심 못지 않은 나트륨이 들어 있습니다. 게다가 야식으로 치킨이라도 먹었다면 섭취한 나트륨 총량에 2500mg 정도를 더 얹어서 계산해야 합니다.

자, 이제 총량을 한번 계산해 볼까요. 저녁의 치킨 야식을 빼고도 가볍게 8000mg을 넘어갑니다. 일상적인 일이지만, 이렇게 계산하니 놀랍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 건강을 걱정하는 의사들이 ‘소금 중독’을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요.

●소금 중독의 메커니즘

소금이 마약은 아니지만 맛에 길들여지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성 콩팥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병원에서 제공하는 저염식에 적응을 하지 못해 의사 몰래 김치나 젓갈류를 가져다 먹거나 심지어는 소금을 감춰두고 먹는 사례도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콩팥병의 대가로 꼽히는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는 소금의 놀라운 맛과 중독성을 스스로 깨닫는 방법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누구나 독하게 마음 먹고 며칠 정도 소금이 전혀, 또는 거의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먹어보라. 시작부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첫째는 그런 음식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 음식을 먹으면 자꾸 소금의 짠 맛이 생각나 견디기 어렵다. 그렇게 며칠을 버틴 뒤 이번에는 짭짤한 감자칩을 먹어보라. 기가 막히게 맛있어 기분까지 좋아질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이미 뇌가 소금의 맛에 길들여져 있어 짠 음식을 먹으면 뇌의 나트륨 중추에서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분비해 쾌감을 느끼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식물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생명체는 소금 없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앞서 말한 양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생리적으로 반드시 소금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소금 요구·salt need’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 등 잡식성에게는 흔치 않지만, 초식동물에게는 흔해 풀만 먹는 코끼리도 소금이 필요하면 냄새로 소금이 있는 곳을 찾아가 코로 핥아댄답니다.

 이와는 달리 소금을 충분히 섭취해 생리적으로는 필요하지 않은 데도 소금을 찾는 경우인데, 이를 ‘소금 취향·salt preference’라고 합니다. 생리적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짠 맛에 대한 욕구 때문에 섭취하는 단계에 해당됩니다.

문제는 이런 소금 취향을 가진 사람은 탐닉 상태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탐닉 상태에서는 당연히 갈망하게 되고, 갈망은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설마…” 하신다면 중독의 의미를 다시 짚어 보지요.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에 따르면, 자꾸 반복하고 싶은 충동(의존성)을 느끼고, 매번 양(또는 횟수)을 늘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으며(내성), 중간에 사용을 중단하면 견디기 어려운 이상 증상을 느끼는 것(금단현상)을 중독이라고 규정합니다. 마약이 그렇고, 담배와 술이 그렇고, 소금도 그렇습니다. [다음 주에 「정말 소금에도 ‘중독’이 될까」2편으로 이어집니다.]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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