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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경유차 규제, 다양한 요인 고려해야/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론] 경유차 규제, 다양한 요인 고려해야/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16-05-30 21:00
업데이트 2016-05-3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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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명의 이기로 여겨져 온 자동차가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질소산화물 등 환경과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배출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각국 정부는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고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해 환경과 연비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도 매년 10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친환경 기술 개발 등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환경청은 지난 40년간 자동차 한 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절반가량 줄었고, 평균 연비는 85%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세계자동차협회는 자동차가 배출하는 미세먼지가 지난 20년간 80% 줄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대기 중의 초미세먼지가 늘자 주요국 정부는 도전적인 규제 목표를 설정해 자동차 업체들이 친환경 자동차를 개발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21세기 들어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시대에서 전기동력 시대로 전환됐다. 자동차산업 초기에 반짝 등장했던 전기동력차는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2009년 이후 각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부활했으나 배터리 성능과 가격, 미흡한 충전하부구조, 충전의 불편함 등으로 지난해 70여만대 판매에 그쳤다. 세계 자동차 판매의 0.8%다.

지난해 ‘디젤게이트’를 초래한 폭스바겐에 이어 미쓰비시, 스즈키가 연비 조작을 인정하자 환경부는 국내에서 판매 중인 닛산 경유차의 연비가 조작됐다고 발표했다. 미세먼지 배출의 주범이 경유차라는 국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경유차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경유 가격을 올리고 휘발유 가격을 내리는 방안도 내놓았다.

200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경유차는 소음공해와 대기오염의 주범이며 경유차가 배출하는 초미세먼지는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기피 대상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국내외 분석 자료에 근거해 경유차를 친환경차로 분류해 각종 지원을 확대하자 소비자들의 구매가 급증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외국 업체가 경유차를 앞세워 내수시장을 잠식해 오자 정부의 ‘친환경자동차 개발 및 보급 계획’에 부응해 막대한 자금을 경유차 관련 기술과 모델 개발에 투자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혔다. 특히 소형 경유차 모델의 다양화는 경유 가격 하락과 함께 서민들의 부담을 완화시켰다. 올해 1~4월 소형 경유 승용차와 상용차 판매는 각각 3만 6000대와 5만대를 기록해 자동차 내수의 15%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국산 승용차 판매의 36%와 수입차의 67%를 경유차가 점할 정도로 경유차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경유차에 대한 각종 혜택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자 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경유차 수요가 줄 경우 개발한 기술을 제대로 상용화하지 못하고 투자 자금만 날릴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내 소비자들과 자동차 업계의 피해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외국 자동차업체, 특히 폭스바겐과 푸조시트로앵 등 유럽 업체들은 중장기적으로 디젤 관련 기술 개발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자칫 국내 경유차 시장을 다시 수입차에 내줄까 우려된다. 정부가 자동차산업의 지속 가능 성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환경과 연비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환경부가 손바닥 뒤집듯 경유차를 ‘클린디젤’에서 ‘더티디젤’로 재평가하고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내연기관을 대체해야 할 국내 전기차 수요는 지난해 3000대를 넘어섰지만 올해 1~4월에는 439대 판매에 그쳤다. 정부가 구매 보조금 지원 대상을 8000대로 늘렸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충전의 불편함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철석같이 친환경차로 믿었던 경유차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전기동력차 수요마저 줄고 있어 국내 친환경차산업의 미래가 암울하다. 규제가 혁신을 유발한다지만 새로운 규제는 충분한 시간과 다양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해관계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마련돼야 한다. 정부는 새로운 규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쏠림 현상과 풍선효과 등 파급효과를 고려해 정책을 수립 운용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황만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2016-05-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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