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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억압 그리고 폭력… 인류 문명 또 다른 역사

차별·억압 그리고 폭력… 인류 문명 또 다른 역사

김성호 기자
입력 2016-07-01 17:36
업데이트 2016-07-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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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성, 권력/윌리 톰슨 지음/우진하 옮김/문학사상/532쪽/2만 5000원

인류 문명은 수많은 요소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엄청난 굴곡과 변화무쌍한 문명을 만들고 추동하는 결정적 요소는 무엇일까. 많은 역사가들이 그 핵심을 들춰왔지만 딱 부러지게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사회주의 역사학자 윌리 톰슨은 놀랍게도 그 키워드를 노동, 성, 그리고 권력으로 명쾌하게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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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쿠바 근해에서 노예로 팔려가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선상 반란으로 선장과 요리사 등 수많은 백인이 목숨을 잃었던 스페인 노예선 ‘아미스타드’호를 본떠 만든 모형 배의 모습. 서울신문 DB
1839년 쿠바 근해에서 노예로 팔려가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선상 반란으로 선장과 요리사 등 수많은 백인이 목숨을 잃었던 스페인 노예선 ‘아미스타드’호를 본떠 만든 모형 배의 모습.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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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에서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이라는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건 20만년 전의 일이다. 1만년 전 인류는 자연을 다스리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4000년이 지나 도시의 건설과 문명의 태동이 있게 된다.

찬란한 발전과 엄혹한 쇠락을 거듭해온 그 문명은 과연 어떤 것일까. ‘모든 문명의 기록은 또한 야만의 기록이다’라는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의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적(史的) 유물론’을 택하고 있다. 물질을 사용하는 인간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원시(수렵)공산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로 진화해온 역사 속에서 종교와 법률, 도덕과 윤리, 계급과 착취, 민족과 이주에 얽힌 빛과 그림자를 촘촘히 들춰낸다.

역사에 기록된 인류 문명의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하지만 모든 문명에는 어김없이 노동·성·권력을 이용한 차별과 억압, 그리고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저자도 인류 역사를 기본적으로 노동하는 자와 착취하는 자의 투쟁으로 본다. 노동과 착취의 대립이 계급과 집단 같은 사회의 핵심제도를 탄생시켰고 자주 학살의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문명사를 보면 정치, 경제적 권력을 쥔 세력은 공물, 농노제, 노예제, 임금노동제의 형태로 훨씬 많은 인간들의 노동이 이뤄낸 성과를 무자비하게 탈취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놀라운 물질적, 지적, 예술적 문화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는 전체적으로 섬뜩할 정도로 매우 암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살다가 죽어간 대부분의 인간은 역사 속에서 수혜자라기보다는 희생자에 더 가까웠다” 전반적으로 비관적인 시선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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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한 결혼식장 하객들 모습. 인도에선 신부가 신랑 측에게 지급하는 결혼 지참금을 둘러싼 시비가 자주 일어 종종 신부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서울신문 DB
인도의 한 결혼식장 하객들 모습. 인도에선 신부가 신랑 측에게 지급하는 결혼 지참금을 둘러싼 시비가 자주 일어 종종 신부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서울신문 DB
인류 문명 속 폭압은 성적 측면에서 늘상 여성을 겨냥했다. 근대까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졌고, 여성 참정권이 확립된 건 불과 100여년 안팎의 일이다. 성적인 문제에 대해 아주 엄격하고 성을 하나님과 멀어지는 인간 타락의 상징으로 보았던 기독교 교회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여성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였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발터 베냐민의 표현을 살짝 비틀어 ‘모든 문명의 기록은 여성 혐오의 기록’이라고까지 말한다. 여성 비하와 폭압의 사악한 관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인도에서 여자 쪽이 부담하는 결혼지참금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버젓이 요구하고 주고받는다. 남자 쪽이 원하는 만큼 지참금을 받지 못하면 신부에게 휘발유를 끼얹어 불태워 죽이기도 한다.

저자가 책에서 줄곧 강조하는 지론은 성·노동·권력의 유기적인 결합이다. 그 사례는 숱하다. 고대 수메르와 로마, 중국에서는 아이를 노예로 팔아 빚을 갚는 관습이 흔했다. 성행위의 산물인 아이를 가장의 권력으로 팔아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다. 매춘도 성·노동·권력이 밀접하게 얽힌 현장임을 부인할 수 없다.

흔히 인류 지성의 성취로 여겨지는 르네상스며 산업혁명, 근대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에서도 저자는 착취와 억압을 이끌어낸다.

권력자들은 인간의 소박한 이기심을 부추기고 조직화해 군림해왔으며 인간은 기회가 있을 때 본질적으로 독재자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음을 꼬집는다. 차별과 억압, 불평등이란 인간 개인 차원에서 인정 욕망이 작동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그 인정 욕망이 오직 다른 사람을 압도하고 싶은 야망으로만 드러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류문명의 시작과 흥망성쇠를 훑은 저자는 인류에 대한 암울한 분석을 미래까지 이어가지는 않는다. ‘모든 옳은 일은 하기 어려운 법’이라는 스피노자의 경구를 인용하면서 말미를 장식하는 건 바로 기후변화를 필두로 한 환경오염 문제이다.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의하는 지구상 모든 조직과 단체들이 가차 없이 단호하게 나서야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6-07-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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