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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마지막 여름 장미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마지막 여름 장미

입력 2016-09-07 22:28
업데이트 2016-09-0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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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기자
김예원 기자


마지막 여름 장미

-토머스 무어

마지막 여름 장미가

홀로 남아 피어 있네;

그네의 사랑스러운 동무들은

모두 시들어 사라졌네;

그네와 비슷한 꽃은 하나도 없고

그네의 붉은 빛을 되받아 비추고

한숨에 한숨을 더할

꽃봉오리도 가까이 없네.

그대 외로운 장미여!

나 그대가 홀로 줄기 위에서

시들게 두지 않으리;

사랑스러운 벗들은 모두 잠들었으니,

가라, 그대도 그들과 함께 잠들게.

그래서 나 그대의 이파리들을

다정하게 화단 위에 뿌리네.

그대의 동무들이 향기를 잃고

죽어 있는 정원에.

나도 곧 그대를 뒤따르리니.

우정이 식고,

사랑의 빛나는 무리에서

보석들이 떨어져 나갈 때,

진실한 마음들이 시들고

좋은 이들이 사라져 없어지면

오! 이 살벌한 세상에서

누가 홀로 남아 살려고 할까?

’TIS the last rose of summer

Left blooming alone;

All her lovely companions

Are faded and gone;

No flower of her kindred,

No rosebud is nigh,

To reflect back her blushes,

To give sigh for sigh.

I’ll not leave thee, thou lone one!

To pine on the stem;

Since the lovely are sleeping,

Go, sleep thou with them.

Thus kindly I scatter

Thy leaves o’er the bed,

Where thy mates of the garden

Lie scentless and dead.

So soon may I follow,

When friendships decay,

And from Love’s shining circle

The gems drop away.

When true hearts lie withered

And fond ones are flown,

Oh! who would inhabit

This bleak world al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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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늦더위가 한창이던 저녁에 서울의 어느 거리를 걷다가, 길모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장미 한 송이를 보았다. 요즘은 보기 힘든 오래된 단층집의 허름한 대문 옆 담벼락을 휘감고 장미 넝쿨이 내려와,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심심한 저녁을 위로하는 선물 같은 아름다움에 꽂혀, 언젠가 아주 옛날에 읽은 시가 생각났다. 시인의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시의 제목은 또렷이 기억났다.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서가를 뒤졌다. ‘마지막 여름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가 실린 시집이 어디 있나? 책장이 작으니 책 찾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아 좋다. 드디어 찾았다. 시인의 이름은 토머스 무어(1779~1852), 아일랜드 태생의 서정시인이며 가수였다. 바이런보다 십 년쯤 먼저 태어났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시인은 서로 알고 지냈고, 베니스를 방문한 토머스에게 바이런이 회고록 원고를 맡길 만큼 친한 친구였다.

더블린에서 식료품상을 경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무어는 일찍이 음악과 공연예술에 관심을 가졌으나 하나뿐인 아들을 법률가로 만들려는 어머니에게 이끌려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무어는 영국으로부터 아일랜드를 해방시키려는 청년운동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고향의 민요를 모아 만든 노래집 ‘아일랜드 멜로디들’(Irish Melodies)은 어떤 정치인의 연설보다 민족 감정을 고취시키는 효과적인 무기였다. 무어의 대표작인 ‘마지막 여름 장미’도 여기 실린 노래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무어의 시에 스티븐슨이 곡을 붙여 오늘날에도 애창되는 노래가 되었다.

유튜브에서 ‘마지막 여름 장미’의 동영상을 감상했는데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부르는 수전 에렌스의 노래가 괜찮았다. 아리랑처럼 마음을 파고드는 애잔한 선율, 단순하지만 흡인력이 강한 멜로디에 푹 빠져 ‘한·중 월드컵 예선 축구경기’를 놓칠 뻔했다. 경기가 시작되는 8시 조금 전에 텔레비젼을 틀어놓고 소리를 죽인 채, 두 발짝 떨어진 책상에 앉아 ‘마지막 여름 장미’의 공연 실황을 감상했다. 그래도 골이 터지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음악에서 축구로 방향을 전환해, 지동원이 첫 골을 넣는 순간은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죽은 뒤에 출판하라며 바이런이 친구 무어에게 맡긴 필사본 원고, 밀방크와의 결혼과 그 뒷이야기를 낱낱이 기록한 비망록은 출판되지 못했다. 1824년 바이런의 사망 소식이 영국에 전해지고 사흘 뒤, 무어는 출판업자인 머레이에게 자신이 보관 중인 바이런의 친필원고를 팔았다. 무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홉하우스와 머레이는 바이런의 회고록을 태워버렸다. 독자들이 바이런을 경솔하다고 비난할까 두려워, 친구의 자서전을 태운 우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로부터 6년 뒤인 1830년, 무어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집필한 ‘바이런 전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더블린에 가면 무어의 이름이 붙은 거리가 있다는데, 일부러 찾아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뜨거운 계절의 골목에서 나를 울렸던 그 노래를 다시 듣고프다. 내 가슴에 피어났던 마지막 여름 장미를 추억하며…. 진실한 애정이 실종된 이 황량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지.

2016-09-0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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