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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그냥 순순히 작별인사하지 마세요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그냥 순순히 작별인사하지 마세요

입력 2016-09-21 22:50
업데이트 2016-09-2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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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순순히 작별인사하지 마세요

-딜런 토머스

그냥 순순히 작별인사하지 마세요,

늙은이도 하루가 끝날 때 뜨겁게 몸부림치고 소리쳐야 합니다;

빛의 소멸에 대항해 분노, 분노하십시오.

현명한 사람들은, 생을 마감하며 어둠을 당연히 받아들일지언정,

자신의 말들이 번개를 갈라지게 하지 못했기에,

그냥 순순히 작별인사하지 않지요.

착한 사람들은, 마지막 파도가 지나간 뒤 울부짖습니다

푸른 해변에서 춤추지 못했던 나약한 행적을 후회하며,

빛의 소멸에 대항해 분노, 분노합니다.

날아가는 태양을 붙잡고 노래했던 사나운 사람들도

해가 이미 지나갔음을 뒤늦게 알게 되어

그냥 순순히 작별인사하지 않지요.

심각한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워 희미해진 눈으로

꺼져가는 눈도 별똥별처럼 빛나고 즐거울 수 있음을 깨닫고

빛의 소멸에 대항해 분노, 분노합니다.

그리고 당신, 나의 아버지여, 그 슬픔의 높이로,

당신의 격렬한 눈물로 제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시기를.

그냥 순순히 작별인사하지 마세요.

빛의 소멸에 대항해 분노, 분노하십시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Though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Because their words had forked no lightning the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ood men, the last wave by, crying how bright

Their frail deeds might have danced in a green b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Wild men who caught and sang the sun in flight,

And learn, too late, they grieved it on its w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rave men, near death, who see with blinding sight

Blind eyes could blaze like meteors and be g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And you, my father, there on the sad height,

Curse, bless, me now with your fierce tears, I pr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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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밤, 텔레비전에서 ‘인터스텔라’를 보았다. 좀 지루했지만 워낙 소문난 영화라 끝까지 보기로 작정했다. 침대에 삐딱하게 누워서 보는 듯 마는 듯하다, 내가 아는 시가 나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죽음을 앞둔 늙은 교수가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가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시는 딜런 토머스(1914~1953)의 대표작인 ‘그냥 순순히 작별인사하지 마세요’(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이다.

시인의 인생을 알아야 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딜런 토머스를 다룬 영화 ‘뉴욕의 시인’을 보았다. 웨일스 지방의 영어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토머스는 어려서 천식을 앓았고 글을 배우기 전부터 아버지가 읽어 주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들으며 자랐다. 학교를 싫어했던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지방신문기자를 하다 그만두고 시를 쓰며 평생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돌았다. 알코올중독에 바람둥이, 천식으로 호홉이 곤란하면서도 술독에 빠지는 자기파괴적인 인간이었다. 나이 서른아홉에 미국 순회 시낭송 여행 중에 뉴욕의 호텔에서 과음으로 쓰러진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20세기에도 술 때문에 죽는 시인이 있나. 뉴욕의 한복판에서 목격된 젊은 시인의 죽음은 언론과 대중을 사로잡았다. 가수 밥 딜런은 그가 숭배하는 딜런 토머스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성을 고쳤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한 귀퉁이, 시인의 코너에 가면 딜런 토머스의 추모판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음유시인의 전통을 계승한 독창적인 목소리로 기억되지만, 살아서 토머스는 후원자가 빌려준 집에서 살며 친구들에게 돈을 구걸해 처자식을 부양하는 골칫덩이였다. 자신의 삶을 주체하지 못했던 시인이 지겨워질 즈음에 친구를 만나 내가 번역 중인 딜런 토머스의 시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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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워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보며 쓴 시야.

‘ight’로 끝나는 행 그리고 모음 ‘ay’로 끝나는 행이 엇갈려 배치되어 리듬감이 생기지. (이처럼 19행에 2운의 시 형태를 ‘비라넬 villanelle’이라고 한다.) 첫 행의 ‘good night’이나 그 밑에 ‘close of day’ ‘dying of the light’도 모두 죽음을 의미하지. ‘gentle’을 ‘부드럽게’로 옮기면 의미가 안 살아. 뭐 적당한 말 없나? ‘순순히’가 좋겠다. 순순히 세상과 작별하지 마세요. 죽음에 맞서 싸우라는 말이지.

너는 어떤 유형의 인간이니? 난 심각한 사람이야. 마지막 연이 제일 좋아. ‘나의 아버지’가 갑자기 튀어나와 독자를 긴장시키지. 죽음 앞에 너무 신사적인 아버지에게 시인은 간청한다. 포기하지 말라고, 사납게 눈물 흘리며 자식을 저주하더라도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그의 시가 살아남은 힘은 바로 그 몸부림, 사랑, 생명의 존엄함에 대한 각성이 아닌지.
2016-09-2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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