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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가장 따뜻한 꽃 목화

[포토 다큐] 가장 따뜻한 꽃 목화

이종원 기자
입력 2016-11-20 17:36
업데이트 2016-11-21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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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 목화 재배단지·함양 솜이불 제작장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 지나고 계절의 길목에 섰다. 찬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하는 이즈음에 옛 여인네들은 너나없이 솜을 틀어서 이부자리를 손질하는 겨울 채비로 바빴다. 가족들에게 보다 포근한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정성이다. 그 시절 솜이불을 만들어 주던 목화(木花)는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 집집마다 재배하는 중요 농작물의 하나였다.

겨울을 위해 피었네
겨울을 위해 피었네 경남 산청 주민들이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의 재배 단지에서 목화를 수확하고 있다. 10월쯤 꽃이 진 자리에 ‘다래’라는 열매가 맺히고 한 달가량 지나면 꽃봉오리가 터지면서 새하얀 목화솜을 드러낸다.목화솜에서 무명실을 뽑는 과정.
경남 산청의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는 고려 말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가져온 목화씨를 심어 재배에 성공한 곳이다. 지난 15일 지리산으로 오르는 길가 오른편에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재배 단지에서는 목화 수확이 한창이었다. 들판에는 눈송이가 내린 듯 하얀 목화솜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목화는 4월에 씨를 뿌리고 9, 10월이 되면 꽃이 핀다. 5개의 꽃잎이 나선상으로 펼쳐지며 흰색과 황색, 홍색을 띤다. 꽃이 진 자리에 ‘다래’라는 열매가 맺히고 한 달가량 지나면 꽃봉오리가 터져서 새하얀 목화솜을 드러낸다. 밭 한가운데서 할머니들이 하얀 솜을 터뜨린 목화를 따고 있었다. “보송보송한데도 씨가 있는 게 희한하다 카이~.” 60년을 넘게 목화를 땄다는 억센 경상도 억양의 김갑술(76) 할머니는 소쿠리 한가득한 목화를 만지며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목화솜에서 무명실을 뽑는 과정
목화솜에서 무명실을 뽑는 과정 ① 솜뭉치들을 한곳에 모아 말린다.
목화솜에서 무명실을 뽑는 과정
목화솜에서 무명실을 뽑는 과정 ② 솜을 씨앗기에 넣어 씨를 빼낸다.
목화솜에서 무명실을 뽑는 과정
목화솜에서 무명실을 뽑는 과정 ③ 물레로 돌리면서 무명실을 뽑는다.
●노란 꽃 진 자리 ‘소복소복’… 지리산 벌써 덮은 목화 눈송이

기념관 대청마루에서는 무명베짜기재현보존회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갓 수확한 목화 열매가 토해 낸 솜뭉치들을 한곳에 모아 말린 뒤 실을 뽑는 일이다. 목화솜이 무명천이 되려면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솜을 씨앗기에 넣어 씨를 빼내고 활시위에 털어서 부풀린다. 서로 엉키게 꼬치로 말아서 물레로 돌리면 실이 뽑아진다. 열 가닥의 실을 모아서 굵은 무명실을 만들고 풀을 먹인 다음 베틀에서 무명천을 짜는 것이다. 목화솜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 옷이 바로 백의민족인 우리 선조들이 즐겨 입던 무명옷이다.

산청군은 목화솜을 활용한 무명베 짜기 기능을 복원, 전수하기 위해 2007년부터 축제를 열고 있다. 목화 따기 체험, 무명베 짜기 재현 등 풍성한 행사가 열린다. 목화 전파 이후 당시의 삶을 윤택하게 한 생필품인 목면(木綿)의 탄생을 기념하는 의미다. 이영복 목면시배유지 관리소장은 “시간이 갈수록 목화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지만 옛날 조상들의 의류 문화를 잘 계승하고 전승해야 할 의무가 후손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목화는 화학섬유에 자리를 내주면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편리함과 더불어 피부염 등 환경의 역습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다시 친환경 소재인 목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목화솜은 공기의 통기성, 땀의 흡수성이 뛰어난 천연 소재다. 또한 숨이 죽을 때마다 새롭게 솜을 틀어 주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솜이불 만드는 과정
솜이불 만드는 과정 ① 수확한 목화솜을 기계에 넣어 씨앗을 빼내고 있다.
솜이불 만드는 과정
솜이불 만드는 과정 ② 목화솜을 솜틀기에 넣어 이불을 만들기 위한 솜을 펴내고 있다.
솜이불 만드는 과정
솜이불 만드는 과정 ③ 목화솜 이불을 만들기 위해 펼친 솜을 홑청에 넣어 밀고 당기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하루종일 채운 정성 ‘보송보송’… 전국에서 찾는 웰빙 솜이불

경남 함양군의 임채정씨는 10여년 전부터 목화를 직접 재배하고 수확해 이불을 만들고 있다. 함양군 상림공원 인근 2000여평의 밭에 틈새 작목으로 재배해 나오는 목화솜은 700~800㎏ 정도로 수확량이 한정적이다. 100여채 남짓인 그의 웰빙 솜이불은 전국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임씨는 “솜이불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하루 종일 밀고 당기고 털고 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화는 이 땅의 의복 생활을 바꾼 ‘가장 따뜻한 꽃’이다. 올겨울은 기습적인 한파와 폭설이 잦을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다. 장롱 속 깊숙이 보관한 솜이불을 꺼내 추억의 향수를 되새기며 겨울을 나 보면 어떨까.

글 사진 산청·함양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2016-11-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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