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김진수의 바이오 에세이] 대통령이 알아야 할 배아연구

[김진수의 바이오 에세이] 대통령이 알아야 할 배아연구

입력 2017-01-09 20:52
업데이트 2017-01-09 22:1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 연구단장·서울대 화학과 교수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 연구단장·서울대 화학과 교수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해 말 새로 당선된 미국 대통령이 결정해야 할 중요한 과학 정책 이슈들을 열거했다. 시민의 삶과 건강, 안전과 밀접한 과학적 현안들이다. 그만큼 국가 지도자의 올바른 판단과 합리적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이 현안들은 비단 미국 대통령뿐 아니라 올해 나올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사이언스가 선정한 여섯 가지 과학 이슈 가운데 특히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 유전자수술 허용 여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법률상 모순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도 당면한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개발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덕분에 이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고쳐 쓰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미 중국 연구진은 인간 배아의 유전자 일부를 유전자가위로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데 성공했고 이에 뒤질세라 유럽, 미국 연구진도 경쟁적으로 인간 배아 연구에 착수했다. 다만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연구는 배아의 착상과 출산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고 실험실에서 배아의 특정 유전자 기능을 연구하거나 유전자가위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지 확대
인간 배아 연구는 나라마다 규제 수준이 다르다.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배아 연구를 법률로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 승인 없이 기관 심의만 통과하면 가능하다. 영국, 일본, 스웨덴 등은 정부의 승인을 전제로 배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반면 한국과 독일 등은 법률로 배아의 유전자 변이를 수반하는 연구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연구 단계를 넘어 유전자치료를 받은 배아를 착상한 뒤 출산하게 하는 임상 적용은 많은 나라에서 법률로 금지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의 등장으로 각국 정부와 국회는 인류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과 국회도 배아 연구를 어느 선까지 허용하고 규제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유전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그들이 출산하게 될 아이들을 생각하면 연구를 허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반면 연구 과정에서 배아가 새로 생성되고 폐기될 수밖에 없어 이를 제한하거나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국내 시험관 아기 시술 산부인과에서 일정 기간 보관한 뒤 폐기되는 잔여 배아가 매년 수만개에 이르는 현실을 돌아본다면 배아 연구 자체를 법률로 금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연구를 금지하면 기술 축적이 불가능해지고 항차 예비 부모들이 외국에 나가 배아 유전자수술을 받고 귀국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국내에서 불법적으로 배아 유전자수술을 감행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연구를 허용하고 합리적으로 규제해야 이런 폐단을 막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국내 생명윤리법은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목적으로 인간의 배아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키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한다. 실제 임상에 적용해 출산에 이르게 하는 것만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목적으로 배아를 만드는 행위 자체를 금지한다. 대신 대통령령으로 정한 일부 질환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 인공수정 후 폐기 예정인 잔여 배아를 활용하는 것은 허용한다.

그러나 잔여 배아 중에 유전자 변이가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에 유전질환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교정을 위한 유전자가위 연구에는 무의미하다. 반면 질병 치료가 아니고 외모, 성격, 지능 등을 개선,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배아 유전자를 바꾸는 행위는 규제하지 않고 있다. 입법 당시에 유전자가위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질병 치료가 아닌 강화 목적으로 인간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법적 모순을 해소하지 않으면 유전자가 강화된 아이가 한국에서 출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차기 대통령과 국회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현행 생명윤리법을 개정해 배아 연구는 허용하되 강화 목적으로 배아 유전자를 수정해 출산까지 이르게 하는 것은 법률로 금지해야 한다.
2017-01-10 29면

많이 본 뉴스

22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선거 뒤 국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 가져야 할 사안은 무엇일까요.
경기 활성화
복지정책 강화
사회 갈등 완화
의료 공백 해결
정치 개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