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하지만 영원한 승자는 없다. 기원전 371년 스파르타는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테베와 보이오티아 연합군에 완패한다. 이로써 스파르타의 육상패권은 테베로 넘어갔고, 스파르타는 영구적으로 이류로 떨어진다. 이 전투는 그리스 역사에서 엄청난 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승리의 주역은 테베의 장군 에파미논다스(BC 420?~362)였다. 아테네의 저술가 크세노폰(BC 430?~355?)은 ‘헬레니카’(Hellenika)에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사실 병력수로 보나 과거의 승전 경험으로 보나 1만여명의 스파르타군이 6000여명의 테베 연합군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테베군은 어떻게 무적의 스파르타군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양군의 핵심 전력인 중무장보병의 진형과 운용에서 전세의 판가름이 났다.
에파미논다스는 전투대형과 운용 방식에서 스파르타 방식과 판이한 새로운 진형을 채택했다. 스파르타의 중무장보병은 방패를 맞대며 횡렬로 늘어선 대열을 열두 겹 정도 두는 전통적 사각진이다. 좌익, 우익, 중앙군을 편성하고 일렬로 배치했다. 반면 에파미논다스는 테베의 좌익 중무장보병의 종대를 무려 50명으로 편성했다. 50겹이 하나같이 움직이는 엄청난 대항력은 스파르타의 얇은 진형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나머지 중앙과 우익은 종대를 얇게 편성하고 좌익의 대열보다 뒤로 처지게 해 전체 전투 대열을 사선(斜線)으로 배치했다.
정예병을 좌익에 두껍게 집중 배치해 적의 정예군이 배치된 우익을 압도하도록 하고, 나머지 군은 적의 대열과 거리를 두게 해 시간차 공격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테베의 낯선 전투대형은 옛 방식에 익숙한 스파르타군을 혼란시키고 패주하게 만들었다. 에파미논다스의 혁신적인 50종대의 방진과 사선 배치 전법은 중무장보병의 전투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이 방식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팔랑크스(Phalanx) 밀집전투대형에 그대로 전수·응용됐다.
적은 전력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면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파격적인 전법을 창안한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전투나 경영, 정치나 선거에서도 승리의 비결은 맥이 통한다. 선두가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후발주자의 혁신으로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구습을 탈피해 혁신적인 방법을 창안하고 도전하는 이가 승리를 얻게 되지 않을까.
2017-02-01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