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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된 몸짓… 치유의 길을 고민하다

詩가 된 몸짓… 치유의 길을 고민하다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7-05-21 21:28
업데이트 2017-05-2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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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극 ‘이불’로 무대에 선 마이미스트 이두성

“억울한 영혼·아이들 위한 공연
누구나 참여할 마임 워크숍 추진”


‘말 없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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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미스트 이두성씨가 생각하는 무언극의 매력은 뭘까. “대사가 있는 극에서 단어가 가지는 의미도 그렇겠지만 한 마이미스트가 표현하는 몸짓을 보고 관객들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죠. 관객들이 저마다 다른 느낌을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언극의 장점 같아요.”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마이미스트 이두성씨가 생각하는 무언극의 매력은 뭘까. “대사가 있는 극에서 단어가 가지는 의미도 그렇겠지만 한 마이미스트가 표현하는 몸짓을 보고 관객들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죠. 관객들이 저마다 다른 느낌을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언극의 장점 같아요.”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한국 창작 희곡의 거장 이강백 극작가가 국내 대표 마이미스트 이두성(54)씨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단 한마디 하지 않아도 수천 마디 말보다 더한 것을 담아내는 이씨의 시적인 몸짓 때문이다. 그 몸짓이 얼마나 거장의 마음을 붙들었는지 이강백 작가는 본인이 대본을 집필한 연극 ‘심청’의 지난해 초연에 참여한 이씨에게 20년 전에 썼던 무언극 대본을 건넸다. 기회가 되면 공연을 해 보자고 하면서. 바로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윤혜숙 연출의 무언극 ‘이불’(28일까지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CKL스테이지)이다.

작품은 언젠가부터 서로 돌아누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한 남자와 여자가 큰 홍수를 겪게 된 이후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남자 역을 맡은 이씨는 집에 물이 차오르는 모습, 배를 타고 물살을 가르는 모습, 무인도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물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 등 극의 모든 상황을 몸으로 차분히 전달한다. 대사가 없어 무대가 허전할 것 같지만 몸짓 언어가 전하는 꽉 찬 울림 덕분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배우들과 작품에 집중하게 된다.

“제가 평소에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 선생님이 대본을 주셔서 그저 감사했어요. 그런데 사실 처음에 대본을 보고 고민이 많았어요. 1994년 마임에 입문한 이후 20년 넘게 저는 주로 추상적이고 몽환적이면서 내면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몸짓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줄거리의 의미를 제스처로 전하는 팬터마임 테크닉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지 않은 이상 팬터마임은 자칫 과장하는 몸짓으로 보이기 쉽기 때문에 그간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했는데 이 선생님 덕분에 요즘 새로 태어나는 기분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계기로 앞으로 하게 될 작품의 방향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몸에 길들여진 관념적인 움직임에만 매몰되지 않고 좀더 편안한 몸짓으로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서다.

“이 선생님이 제게 작품의 줄거리를 다 바꿔도 상관없으니 이 무언극을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아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제 스스로와 만나기 위한 고투를 몸짓으로 표현했다면 이제 개인이 아닌 모두를 치유할 수 있는 몸짓을 해 보고 싶어졌어요. 억울하게 죽은 무명씨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제 나름대로 그들을 추모하고 싶고, 또 동심으로 돌아가서 어린아이들이 볼 수 있는 밝은 무언극도 해볼 계획입니다.”

그는 그간 여러 마임 축제와 연극 작품에서 배우와 연출로 참여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움직임 지도를 하고 있다. 작품에 참여하는 것만큼 사람들로부터 얻는 게 많단다.

“우연한 기회로 시민들과 만나게 된 자리가 있었죠. 그때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움직임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뒤늦게 대학원에서 연기를 배웠어요. 그 이후로 배우, 학생, 교사 등을 대상으로 움직임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을 함께 해 왔죠. 이번 공연을 계기로 앞으로 2~3년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마임 워크숍을 진행할 겁니다. 그동안 생각만 해 왔는데 이번엔 꼭 하려고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동작으로 ‘몸의 시’를 써 온 이씨는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다 길에서 죽는 게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몸짓과 몸짓이 지닌 의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 중 하나가 장석남 시인의 ‘수묵 정원·9-번짐’이에요.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라는 구절들을 제가 참 좋아해요. 저는 마임이 꼭 그런 것 같아요. 서로에게 번져서 우리의 삶을 환하게 비추는 몸짓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7-05-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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