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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다름’의 이해 - ‘옳음’과 ‘틀림’, ‘놔둠’ 사이/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열린세상] ‘다름’의 이해 - ‘옳음’과 ‘틀림’, ‘놔둠’ 사이/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입력 2017-06-08 17:56
업데이트 2017-06-0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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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라디오에서 공익광고가 흘러나온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아름다운 사회라고. 숫제 ‘다름’을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으로 본 정부 문서도 있다. 과연 ‘다름’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게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이 시대 다원주의 사조가 표창하는 것, 바로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게 절대 맞는 말인가. 진리가 없다는 것과 그게 진리라는 건 큰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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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인간은 너무도 다르다. 타고나는 것 외에도 성격, 지성, 취향 등 환경과 관계의 변수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물론 각각 다른 인간 존엄성에 의문을 품자는 게 전혀 아니다. 다만, 존엄한 인간이라도 공동체 보호라는 또 다른 가치의 제한은 필요한 법이다. ‘다름’을 존중한다는 게 살인, 절도, 폭행, 음란 등의 취향까지 수용할 순 없기 때문이다. 분명 받아들일 수 없는 ‘다름’이 있다. 이 영역을 기준 짓는 게 ‘법’이고, 이를 준수하란 공동체 약속이 ‘법치주의’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다름’을 존중하란 명제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모습 중 수용과 거절의 기준을 미리 고정치 말고 변화를 꿈꾸어 보란 명제 위에 서 있는 거다. 수많은 다름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용인의 영역에 놔둘 건 무언지 ‘기준’을 정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게 바로 ‘법적 안정성’이다. 다만, 옳고 그름의 기준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변화에 반응하여 평화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바로 ‘기준’의 변화 가능성이 다원화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근간이리라.

과연 ‘옳음’, ‘틀림’, ‘놔둠’의 영역은 어디에 있는가. 공동체의 합의 중 법이 대체로 규율하는 게 옳음과 틀림인데,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이 그 다름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지 잠재적 가능성까지 고려한다. 마약 흡입자를 격리하는 건 중독성을 전파할 가능성을 막으려는 거다. 또 다른 기준은 인간이 그 다름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다. 누군가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한다면, 때론 강제력을 동원하더라도 이를 멈추게 해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라면 그를 구해 줄 의무를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두 기준을 작동케 하는 건 ‘이기심’과 ‘이타심’이다. ‘이기심’은 사람의 다름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를 거절하려는 마음이다. 이건 그냥 자연발생적인 인간의 기본 품성이다. 한데 공동체를 위해 무척 소중한 가치인 ‘이타심’ 또한 이기심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기본 품성 아닌가. 인간이 더불어 사는 한 누군가 곤궁에 처하고 죽어 가는 걸 그냥 지나치는 건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 그렇다. ‘법’은 공통체로부터 ‘틀림’을 제거하기 위해 ‘이기심’과 ‘이타심’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낸다. 그리고 도덕의 최소한이 ‘법’이라 하듯 옳음과 틀림을 구별 짓는 건 구성원들의 열띤 토론이 빚어낸 참다운 합의리라.

‘놔둠’은 공동체의 다양성과 유동성을 보장하고, 첨예한 갈등을 완충해 준다. 간통만 해도 최근 형사법상 놔둠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물론 가족법상으론 일부일처제를 수호하려는 도덕적 합의에 따라 여전히 틀림의 영역에 있다. 이처럼 ‘놔둠’은 수많은 이익 충돌영역 중 옳음과 틀림을 기준 짓기 어려운 부분을 개인 판단에 맡겨 놓은 영역이다.

흡연도 보건적 측면에선 틀림의 영역일 수 있다. 하나 미성년자 판매 처벌, 금연구역 과태료 부과 등 일정 제한이 있을 뿐 나머진 선택의 영역에 두었다. 사실 ‘놔둠’의 영역은 각종 문제에 관한 토론의 장을 보장하고, 수많은 논쟁을 통해 공동체를 건강케 한다. 그렇기에 자유민주주의는 표현, 양심, 신앙의 자유를 기본으로 하는 거다. 각자의 양심과 신앙대로 공동체의 문제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 이를 통해 기준이 달라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요소다.

무조건 ‘다름’을 인정하는 게 좋은 건 아니다. 그 다름이 과연 ‘옳음’과 ‘틀림’, 그리고 ‘놔둠’의 영역 어디인지 자유롭게 토론하고 표현하는 공동체가 건강한 거다. 물론 이를 막는 두 세력이 있다. 개인이나 집단 독재가 그 하나고, 포퓰리즘이란 전체주의가 다른 하나다. 대한민국이 언제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길 바란다.
2017-06-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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