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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8월 한복판에서 - ‘아리랑’, ‘사이판에 가면’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8월 한복판에서 - ‘아리랑’, ‘사이판에 가면’

입력 2017-08-21 17:52
업데이트 2017-08-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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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성공회대 대우교수·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 성공회대 대우교수·대중예술평론가
달력을 넘기다 보면 4~5월과 6~8월의 기념일이 꽤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4~5월에는 4·19로 시작해 메이데이를 거쳐 5·18로 이어져, 주로 대중적인 봉기와 관련된 기념일들이 몰려 있다. 그에 비해 6~8월은 현충일에서 시작해 6·25를 거쳐 제헌절, 광복절로 이어져 국가·정부가 중심이 되는 기념일들이 몰려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시위·집회는 아무래도 날이 따뜻해지는 4~5월에 제일 활발할 테고 해방·정부수립이 모두 8월 15일이며 김일성이 8·15 5주년에 부산 접수를 목표로 남침했다니 이 시기에 이런 기념일들이 몰려 있게 되었을 게다.

이제 열흘 정도 남은 8월의 달력을 보면 일 년 중 큰 흐름 하나가 바뀐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저 바람의 온도가 낮아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8월을 보내며 두 노래를 기억하는 것이 조금은 의미 있을 듯싶다.

하나는 ‘아리랑’이다. 전국에 수많은 ‘아리랑’들이 있지만 그냥 ‘아리랑’이라 지칭되는 노래는 이 한 곡뿐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한민족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남아 있다는 노래, 심지어 우리말을 잊은 사람도 이 노래만은 기억하고 있다는 노래가 이 곡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1926, 작사·작곡 미상)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반은 이 노래가 당연히 몇백 년 전부터 전래된 민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노래는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였다. 즉 대중가요이다. 물론 이전에도 서울지방에 ‘아리랑’이 있긴 했다. 하지만 곡조가 꽤 다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이 두 노래를 ‘본조(本調) 아리랑’(혹은 ‘서울아리랑’)과 ‘구조(舊調) 아리랑’으로 구별하여 지칭한다. 추정컨대 영화를 만들면서 ‘구조 아리랑’을 참고로 하여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냈다고 보인다.

영화의 폭발적 인기를 타고 이 노래는 놀랍도록 빠르게 퍼져 나가며 수많은 민요적 변이현상이 생겨났다. ‘아리랑’, ‘아라리’라 불리는 수많은 노래가 민요로 존재한 터에 대중문화의 힘이 보태진 결과였다.

영화 ‘아리랑’도 일인극인 ‘독(獨) 아리랑’까지 만들어져 쇼 레퍼토리로 자리잡을 정도였으니, 연극·영화보다 더 쉽게 확산되는 노래는 어떠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가요 ‘아리랑’은 민요화되었다.

이 ‘아리랑’이 거론되는 노래 한 곡을 더 소개하고 싶다. 민병일의 시를 노래화한 이지상의 ‘사이판에 가면’이다.

수평선 해거름 지는 사이판에 가면 / 자살 절벽 있다지 봉숭아 물든 조선 처녀들 / 꽃잎처럼 몸 던진 자살 절벽 있다지 / 눈부신 햇살 번지는 사이판에 가면 / 신혼부부 있다지 밀월여행을 즐기는 아담과 이브 / 밤이 오면 무르익는 사랑노래 있다지 / 잡초 크게 웃자란 절벽에선 지금도 / 처녀들 신음소리 바람에 실려 오고 / 한국인 위령탑엔 갈 곳 없는 고혼들 / 떠돌고 있다지 맴돌고 있다지 / 낭만의 섬 낙원의 섬 사이판에 가면 / 전설 같은 정신대 조선 처녀들 남긴 아리랑 / 아라리오 부르는 원주민들 있다지 / 아라리오 기억하는 원주민들 있다지/ 이지상 ‘사이판에 가면’(1998, 민병일 작시, 이지상 작곡)

해외여행 붐을 타고 단골 신혼여행지로 부상한 사이판의 달콤한 분위기와,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잔존 일본군과 함께 물속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강제징용 노동자와 위안부의 대비가 강렬하다. 이 아이러니한 풍경 속에 배치된, 원주민들이 부르는 노래 ‘아리랑’은 더욱 절묘하다.

그런데 사이판만이 아니다. 오키나와에 끌려간 위안부들도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2008년에 건립된 위안부위령비의 명칭도 ‘아리랑비’이다.

그저 노래 한 자락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마음이 새삼스레 이 8월에 다가온다.

2017-08-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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