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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의 B컷 월드] 선의는 고맙지만

[김민희 기자의 B컷 월드] 선의는 고맙지만

김민희 기자
입력 2017-08-22 17:52
업데이트 2017-08-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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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국제부 기자
김민희 국제부 기자
38세의 프랑스인 세드리크 에루. 그는 그저 평범한 농부였다. 저 멀리 이탈리아가 보이는 남프랑스의 국경 지대 브레이유쉬르로야에서 올리브를 기르며 평화롭게 살았다. 그의 평화가 깨진 것은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중해를 건너온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동네 정류장까지 차로 태워 주는 수준이었다. 어느새 그는 국경을 넘나들며 이민자들을 데려와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인권운동가들과 함께 프랑스 국영철도회사 소유의 건물에 이민자들을 머물게 했다가 경찰에 체포, 기소됐다. 1심에선 3000유로(약 400만원)의 벌금과 집행유예를, 항소심에선 그보다 중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는 최후 변론에서 “우리가 프랑스의 근본을 잃어 가고 있다”면서 “국가가 실패할 경우 행동에 나서야 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사대주의자라 해도 좋다. 그의 기사를 읽고 “역시 프랑스”라며 감읍했다. 자유·박애·평등의 나라는 과연 다르구나. 일개 농부마저 남다른 철학과 정의감을 갖고 있구나. 그런데 얄궂은 것은 세상을 살다 보면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로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난민과 이민자 문제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의 호의로 이민자들이 유입되면 이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하위 계층의 불만이 터진다. 그런 불만을 정치적으로 규합한 우파가 집권해 배타적인 이민 정책이 시행된다. 난민과 이민자들에게 정착은 점점 더 요원해진다. 이게 바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슬픈 악순환이다.

기사를 쓰기 위해 매일 아침 외신을 체크할 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 활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피비린내가 나는 듯하다. 전 세계에서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트레일러에 갇히고 보트에서 떠밀려 목숨을 잃는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사는 이민자의 숫자는 2015년 이미 피크를 찍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다인 2억 4400만명. 터키 해변에 죽은 채 엎드려 있던 3살 시리아 꼬마 에이란 쿠르디가 전 세계를 울린 바로 그때다. 신분이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난민도 마찬가지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2016년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난민은 1718만 7488명이다. 네덜란드 인구 1701만 6967명에 맞먹는다.

상황이 이쯤 되면 세드리크 에루 같은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난민과 이민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나라 간 ‘폭탄 돌리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해안경비대의 경계를 대폭 강화한 올해 이탈리아의 난민선 봉쇄 방안이 대표적이다. 난민과 이민자를 표적으로 한 증오 범죄, 거꾸로 난민·이민자에 의한 테러 위험 같은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는 까닭도 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파리기후협약이나 사막화방지협약같이 전 지구적 연대를 통해 난민과 이민자 문제 해결을 모색할 때가 됐다. 우리나라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도처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2017-08-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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