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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빼앗으면 나는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

“시 빼앗으면 나는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09-29 17:30
업데이트 2017-09-30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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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깊은 곳/고은, 김형수 대담/아시아/224쪽/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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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고은 시인
“나에게서 시를 빼앗으면 나는 뱀 허물이고 거미줄에 걸린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 내 묘비에는 내 이름 대신 ‘시’라는 한 자만 새겨질 것이네. 시는 먼저 내 신체이네. 그다음이 가엾은 혼인지 뭔지일 것이네.”
시인 고은(84)의 생애와 문학을 부감할 수 있는 전경이 펼쳐진다. ‘현란한 상상력과 아포리즘이 가득한’ 광대무변의 언어로 춤을 추는 시인. 그 파동이 울려나오는 깊은 곳에 가닿고 싶은 후배 문인이 나눈 대담집에서다. 일본어를 국어로 배웠던 시인이 자신의 삶을 ‘모국어에의 헌신’으로 구현한 과정, 미수로 그친 네 차례의 자살 시도, 투옥과 연금 생활, 아시아 대표 시인으로서의 활약상 등이 김형수 소설가의 거듭된 물음 앞에 구술된다.

“시가 무서워 화가가 되려 했다”는 시인의 운명을 돌려세운 것은 학창시절 읽은 시집 ‘한하운시초’였다. “이 시인처럼 문둥병에 걸릴 것과 이 시인처럼 떠도는 시를 쓸 것을 새벽에 맹세했다”는 시인은 팔순이 지난 지금까지도 왕성한 생산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나는 신명이네. 이 신명이 내 손을 내달리게 하지. 나는 춤이네. 나는 주술이네.”

신명으로 쓰인 시는 1990년대 이후 해외로 무대를 넓혔다. 지난 20여년간 해외 시 축제에 100회가량 초청받았고 그의 시집은 타밀어, 방글라어, 쿠르드어 등 소수언어로까지 세계 32개 언어로 번역됐다. “어쩌면 지난 시대 출국금지에 대한 보상인가 한다”는 시인은 “시는 모국어의 천부적 행복 속에서 살아 있는 것 이상으로 다른 세상의 언어로 재생할 꿈을 가지고 있는 순례의 운명을 가졌다”고 말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9-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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