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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노년판 홍대거리… 느림이 고맙다

[포토 다큐] 노년판 홍대거리… 느림이 고맙다

입력 2017-10-09 17:40
업데이트 2017-10-0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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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옛 향기 품은 골목길을 가다

서울 종로 복판에 옛 풍미를 간직한 골목길이 있다.

탑골공원을 끼고 있는 ‘락희(樂喜)거리’와 ‘송해길’이다.
DJ 장민욱씨가 거리에서 보이는 음악감상실 뮤직박스에서 손님들의 음악신청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DJ 장민욱씨가 거리에서 보이는 음악감상실 뮤직박스에서 손님들의 음악신청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송해씨가 종로 송해길보존회 사무실에서 제1회 종로 송해가요제 수상자들에게 시상하고 수상자, 회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송해씨가 종로 송해길보존회 사무실에서 제1회 종로 송해가요제 수상자들에게 시상하고 수상자, 회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원 뒤편 담에서 시작하는 골목길이 일본 노년층 특화거리 ‘스가모거리’를 모델로 조성한 락희거리이다.

락희는 ‘러키’(lucky)를 음차(音借)한 것으로, 그 자체로 정겹다.

그 거리 끝에서 종로로 나오는 큰길이 방송인 송해씨의 지역 활동을 기념해 이름 지어진 송해길이다.

젊은이가 열정을 발산하고 꿈꾸는 거리가 홍대거리라면 이 골목길은 노인들이 세상을 관조하며 추억을 즐기는 길이다.

홍대 앞에 활기가 넘친다면 이곳에는 잔잔한 여유가 흐른다.

락희거리 골목 어귀 음악감상실에서 냇 킹 콜의 ‘투 영’(Too Young)이 낮은 디스크자키(DJ)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온다.

낮술 한 잔에 얼큰해진 사람이 발길을 멈추고 낮은 소리로 따라 부른다.

DJ 장민욱(63)씨는 좋은 음향기기는 아니지만 서울 사대문 안에 유일하게 DJ박스가 있는 음악감상실이라고 가게를 소개한다.
송해길 뒷골목에 줄지어 있는 이발소에 많은 노인들이 북적인다. 평균 이발비용이 3500원으로 저렴하다.
송해길 뒷골목에 줄지어 있는 이발소에 많은 노인들이 북적인다. 평균 이발비용이 3500원으로 저렴하다.
바로 옆 깔끔하게 단장한 이발소 앞에는 머리 염색약을 바른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시국토론에 열중이고, 맞은편 모퉁이에 설치된 커피자판기 앞에는 친구 사이로 보이는 노인들이 200원 자판기 커피를 서로 사겠다는 기분 좋은 실랑이를 벌인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커피자판기를 물려받아 2대째 운영하고 있는 고한순(63)씨가 자판기를 청소하고 재료를 보충하고 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커피자판기를 물려받아 2대째 운영하고 있는 고한순(63)씨가 자판기를 청소하고 재료를 보충하고 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커피자판기를 물려받아 2대째 운영하고 있는 고한순(63)씨는 “깨끗해진 거리는 좋은데 노인들이 앉아 쉬던 담벼락 자리까지 사라져 길에서 커피 한 잔 편하게 마실 수 없다”며 아쉬워한다.

락희거리를 지나 송해길로 접어들면 복잡하지만 활기가 느껴진다.

곱게 차려입은 노인들 사이로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이들도 눈에 띈다.

2층으로 눈을 돌리면 송해길 사랑방 역할을 하는 옛 분위기를 간직한 다방, 술집들이 있다.

둘러보며 만난 사람의 얘기는 다양하다.
노인에게 생수를 제공하고 화장실를 개방한다는 낙희거리 상점 표지판.
노인에게 생수를 제공하고 화장실를 개방한다는 낙희거리 상점 표지판.
건물주와 상인은 상권 활성화를 기대하고, 거리에서 만난 주머니 가벼운 노신사는 저렴한 가격으로 먹거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가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리고 뒷골목 담에 기대어 장사하는 손수레 상인, 허술한 포장마차 주인과 낮술에 취한 손님들은 변화를 강하게 거부한다.

거리가 어두워지면 노인들은 사라지고 송해길 식당은 주변 직장인으로 채워진다. 입소문이 난 맛집과 조명을 밝힌 가게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노인들이 어둠이 내린 락희거리 해장국집에서 소주 한 잔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노인들이 어둠이 내린 락희거리 해장국집에서 소주 한 잔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저녁술 한잔하는 노인들은 락희거리 모퉁이 2500원짜리 해장국집과 뒷골목 맥줏집 창문 너머에서나 볼 수 있다.

거리가 정비되고 활성화되면서 오히려 노인들이 갈 곳이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저녁 무렵 음악감상실에서 냇 킹 콜의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 노래가 흘러나온다.

냉면으로 유명한 맛집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젊은 연인은 가볍게 리듬을 타고 노점 플라스틱 탁자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노인은 발박자를 맞춘다.

노인 3명 중 1명이 홀로 사는 외로운 고령 사회에 락희거리와 송해길이 노인들이 모여 과거 추억만 소비하는 거리로 한정돼서는 안 된다.

노인들이 세상과 연결되어 새로운 추억과 문화를 만들고 다른 세대와의 소통, 공존이 가능한 공간으로 발전해야 한다.

글 사진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2017-10-1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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