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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헌책/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헌책/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7-11-16 22:34
업데이트 2017-11-1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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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동치미는 묵혀야 제맛이고, 책만은 새것이라야 한다고 고집했다. 딴 데 아낄 일이지, 새 책을 단념할 일은 없다 싶었다. 옛 문사들은 손때 묻은 책의 운치를 자주 들먹였다. 이태준 같은 이는 “먼지를 털고 겨드랑 땀내 같은 것을 풍기는” 고서점 책들의 함축미를 칭찬했다. 그럴 때도 고개를 저었다. 세월의 흔적이 구수한들 칼칼한 잉크 냄새, 새 책의 쨍한 맛을 당해 낼까.

요사이 헌책 읽는 맛이 제법이다. 절판돼 서점에 없는 책을 인터넷으로 사들였다가 몰랐던 재미를 알았다. 뜻밖의 덤이 붙어 온다. 책갈피에 엄지 만한 단풍잎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늦가을 어느 오후에 누군가의 상념은 이렇게 붉었을까. 꼼짝없이 붙들려 박제된 하루살이 한 마리. 한여름 깊은 밤 누가 잠 못 들어 뒤챘을까. 그 누가 그어 놓은 밑줄에 오래 눈이 간다.

군생각들이 성가시지 않다. 산전수전에 인전(人戰)을 보태며 손때로 둥글어진 모서리. 누워 읽다 깜빡 졸음에 콧등을 찧어도 탈 없다. 그저 괜찮다.

시간을 겪어 제 몸 둥글린 헌책처럼, 여물어 순해진 가을 열매처럼. 둥글둥글하게, 구수하게.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7-11-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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