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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몽상, 어린 시절 기억 속으로

배수아의 몽상, 어린 시절 기억 속으로

조희선 기자
조희선 기자
입력 2017-11-17 21:52
업데이트 2017-11-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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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물/배수아 지음/문학동네/312쪽/1만 3500원

배수아(51)의 소설은 모호하다. 몽상에 빠진 듯 축축한 인물과 이국적인 정취를 머금은 풍경은 마치 꿈결을 걷는 듯하다. 이 특유의 분위기는 배수아를 하나의 장르라고 표현할 만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어떤 면에서 명확하다. 그가 건설한 또 다른 환상적인 세계가 새 소설집 ‘뱀과 물’에 담겼다. 단편 소설 두 편을 묶은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2016)을 제외하면 ‘올빼미의 없음’(2010) 이후 7년 만에 내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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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작가가 직접 고른 책 표지 사진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짙은 검은색 배경 속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단발머리의 여자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작가가 독일에서 구한 체코 사진작가 프란티셰크 드르티콜 사진집에 수록된 제목이 붙지 않은 작품이다. 이메일로 만난 작가는 “사진을 보는 순간 불안, 불균형, 불길, 부조화, 부조리, 어둠, 카오스, 암시, 예언, 몸, 유령 그리고 무의식과 에로티즘 등의 어휘가 동시에 소용돌이쳤다”면서 “사진은 책에 실린 글의 일부이자 글을 완성하는 이미지”라고 말했다.

표제작 ‘뱀과 물’을 비롯한 소설 7편은 서사가 명확하게 요약되지 않는 가운데 인물과 사건이 서로 겹치고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연관된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역사가 기록되지 않은 과거 야만의 시간”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낯선 시공간을 배경으로 어린아이들이 마주하는 ‘형체 없는 어둠’을 그려냈다. 등장인물들은 유원지에서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한번도 가보지 않은 ‘스키타이족의 무덤’으로 떠나거나(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 ‘나’와 이름이 같은 눈먼 소녀가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을 목도한다(노인 울라에서). 교실에서 한 교사가 백일몽을 꾸는 동안 교사와 같은 이름을 지닌 어린 학생은 죽음에 이르고(뱀과 물), 우연히 만난 어린 소녀와 자매가 된 ‘나’는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며 앓다가 숨진 어머니를 들여다본다(도둑 자매). 작품 속 아이들은 자신의 곁에 없는 부모의 흔적을 좇아 길을 떠나면서 부재를 의식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상실을 경험한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상상 속에서 마주한 환상인지 그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작가는 “어린 시절은 ‘생 이전의 생’과 밀접하고, 완전하게 구체화된 이성의 세계로 건너오기 전의 신화와 전설에 가깝다고 본다”면서 “이 책은 어린 시절을 이상화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반대”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은 망상이에요. (…) 어린아이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 속에서 누런 개처럼 돌아다니는 유령입니다’(1979)와 ‘그가 어린 시절에 대해서 쓰고 있는 동안은 어린 시절을 잊는다. 갖지 않는다. 사라진다’(뱀과 물)와 같은 문장은 언뜻 어린 시절을 부정하는 듯 보인다. 이에 작가는 “시간의 순차성을 거부하고 모든 시간의 동시성을 옹호하는 진술들”이라고 답했다. 소설집 말미에 작품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강지희의 말이 이해를 돕는다. “죽음과 삶의 아슬아슬한 틈새를 지나가고 있는 그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아이들뿐이다. 이 아이들은 영원히 림보에 머물러 있는 자, 불가능한 죽음을 주재하는 샤먼처럼 보인다. 바로 이 순간에 배수아는 자신이 그를 바라보는 아이가 되기를, 영원히 그의 꿈을 꾸는 샤먼이 되기를 선택한 듯하다.”(279쪽)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7-11-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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