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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사후 31년…‘대공분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박종철 사후 31년…‘대공분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강경민 기자
입력 2018-01-14 10:26
업데이트 2018-01-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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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경찰 보안수사대 분실 27곳…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 조사낡은 건물·사방이 하얀 조사실…조사 경험자들 “음습하고 위압감 드는 곳”고문 등 가혹행위 없어…‘○○상사’ 등 위장 간판도 사라져

김모(28)씨는 2011∼2012년 북한의 대남 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트윗을 몇 차례 리트윗했다. 선전 방식이 우스꽝스러워 장난으로 비꼬려는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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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영동 대공분실
옛 남영동 대공분실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하루 앞둔 13일 촬영한 서울 용산구 경찰인권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
연합뉴스
이후 김씨 집은 경찰 압수수색을 당했고, “출석해 조사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그가 조사받은 곳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경찰청 보안분실이었다.

경찰은 정확한 주소는 알려주지 않고 “홍제동 어디 근처로 와서 전화하라”고만 했다. 버스를 타고 가 전화했더니 “어느 학원 뒷골목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찾아간 홍제동 보안분실의 첫인상은 이랬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서니 그냥 평범한, 오래돼 보이는 주택가와 동네 학원들이 있었어요. 조금 더 들어가니 마치 부잣집 저택처럼 높은 담이 있더군요. 저택 같기도 하고, 작은 시골 초등학교 분교 같기도 했어요.”

보안분실은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보안수사대가 사용하는 별관이다. 과거에는 ‘대공분실’로 불렸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고(故)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숨진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처럼 군사정권 시절에는 인권유린이 자행되던 공간이기도 했다.

주택가 등 노출된 장소에 있음에도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시설 명칭을 알리는 간판조차 없어 일반인들은 정체를 알기 어렵다.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경찰서 등 일반 경찰관서처럼 민원인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도 아니다.

◇ 사방이 하얀 조사실…경험자들 “세상과 격리된 느낌”

김씨가 수사관을 따라 들어간 건물은 꽤 낡은 상태였다. 조사실이 있는 복도 창문이 너무 작은 것이 특이했다. 가로 폭이 성인 손으로 한 뼘밖에 안 될 만큼 좁았고, 세로는 길쭉했다. 김씨는 “창문으로는 대문 밖이 전혀 보이지 않아 ‘여기서 무슨 일이 나도 밖에서는 모르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사실 내부 벽이 ‘완벽한 흰색’이었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벽이 온통 새하얗다 보니 뭔가 압도당하는 것이 있었다”며 “창문은 없었고, 컴퓨터 1대가 놓인 책상 뒤로 세면대와 변기가 있었다. 변기 주변은 벽돌 타일로 둘렸지만 변기에 앉으면 하반신만 가려지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2015년 서울 종로구 옥인동 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분실에서 조사받은 진보단체 회원 김모(44)씨도 “위압감이 들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 역시 창문이 없고 온통 하얀색이던 영상녹화실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는 “옥인동 분실은 주택가에 있는데 철문 밖에서는 안이 잘 안 보인다. 무척 오래돼 보이는 시멘트 건물이었고, 건물 자체에 싸늘함과 으슥함이 있었다”며 “그들이 만든 공간에 나만 놓아둔 채 조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대문구 대신동 보안분실에서 조사받았다는 이모(51)씨도 “세상에서 격리돼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런 사건 피의자만 따로 다른 공간에서 조사받게 하는 것 자체에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보안분실 정체를 노출하지 않으려고 일반 회사나 연구소인 양 ‘위장 간판’을 설치하기도 했다. 옥인동 분실은 ‘부국상사’, 동대문구 장안동 분실은 ‘경동산업’, 양천구 신정동 분실은 ‘치안연구소’ 등으로 위장했다. 지금은 이런 간판을 단 보안분실이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 고문 등 인권침해는 옛말…‘사상검증’식 질문은 여전

영화 ‘1987’ 등에서 적나라하게 소개된 대공분실의 폭력적 수사 방식은 이미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14일 연합뉴스가 인터뷰한 보안분실 조사 경험자 3명은 조사 과정에서 고문이나 구타 등 인권침해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신동 분실에서 조사받은 이씨는 “질문을 미리 만들어 놓고 또박또박 물어본다”며 “녹취는 무엇 때문에 하고 근거 법령은 무엇인지 다 적혀 있고,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질문을 반복하는 등 행위도 없었다”고 말했다.

홍제동 분실에 다녀온 김씨는 “폭압적이라고 할 만한 분위기는 없었다”며 “50분 조사한 뒤 10분 쉬는 식이었고, 10분 쉴 때는 계단 구석에 가서 수사관과 함께 담배도 피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다만 혐의 내용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상검증’식 질문을 받아 기분이 나쁘거나 당혹스러웠던 적은 있었다고 이들은 전했다.

김씨는 “내가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를 받았으니 그에 관해서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총장실 점거는 왜 했는지, 어떤 선배와 무슨 관계인지 등까지 질문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고까지 물어 정말 황당했다”면서 “압수수색 당시에는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혁명선언’을 프린트한 종이가 있었는데 ‘혁명’이라는 단어가 나온다고 압수해 갔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씨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니 ‘지금 수사 방해를 함으로써 북한 공산집단의 좌익 폭력혁명에 동조하려는 의미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냐’라고 묻더라”며 “인격 모독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조사 경험자들은 경찰이 오늘날 굳이 이처럼 은폐된 보안분실을 따로 둘 필요가 없지 않으냐며 한목소리를 냈다.

김씨는 “그들이 정말 자신들 주장처럼 대통령이나 정권 안위가 아닌 국가를 위해 당당한 공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음습한 곳에서 일할 이유가 있나”라며 “보안분실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본청과 전국 지방경찰청 소속으로 현재 43개 보안수사대가 편성돼 있다. 별관 형태로 운영되는 보안분실은 모두 27곳으로, 전체 보안수사대의 90%인 39개 수사대가 분실에서 근무한다.

최근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경찰은 권한 증가에 따른 인권침해 우려를 없애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전국 보안분실 현황을 재점검해 인권침해 요소가 있으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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