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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점이 되어 광활한 우주 수놓다

그리움이 점이 되어 광활한 우주 수놓다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8-03-27 23:06
업데이트 2018-03-28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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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회화 거장’ 이성자 탄생 100주년 기념전

‘동양의 지혜로/가로 놓인//은하수/먼 별들의 다리//일 년에 한 번/만났다 헤어지는 사랑을 위한/하늘의 다리//이것은 사랑하는 사람 마음 사이에만 놓이는/동양의 다리다//그리움이여/너와 나의 다리여’(조병화의 시 ‘오작교’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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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 화가(1918~2009)
이성자 화가(1918~2009)
그리움으로 찍은 점 하나하나가 서양과 동양, 우주를 잇는 ‘초월의 화폭’이 됐다. 푸른빛을 주조로 한 섬세한 색채의 변주가 돋보이는 ‘오작교’(1965). 시인 조병화가 동명의 시를 바친 이 작품은 재불 서양화가 이성자(1918~2009)가 품었을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 고향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과 간절함이 치밀한 붓 터치에서 배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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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월 4, 90(1990), 캔버스에 아크릴릭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월 4, 90(1990), 캔버스에 아크릴릭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이성자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을 모은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전이 7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신여성 도착하다’전(덕수궁관·4월 1일까지)과 연계해 그간 우리 미술사에서 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여성 미술가들을 다시 주목하고자 기획된 자리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세계를 시기별로 조망할 수 있는 회화, 판화, 모자이크, 도자 등 127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서양화의 기법과 동양적 정서, 사유가 경계 없이 어우러진 이성자의 독특한 작품 세계는 우리 미술사를 살찌우는 토양이 됐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불어 한마디 할 줄 모르던 그는 프랑스로 떠났다. 남편의 외도로 12년간의 결혼 생활이 깨지고 사랑하는 세 아들, 어머니와 생이별을 한 채였다. 의상 디자인을 공부해 곧 돌아오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순수미술에 대한 재능이 눈에 띄어 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돌보는 마음으로 그림에 매달렸던 그는 프랑스 화단에서 먼저 인정받으며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60년 화업을 이어 가게 됐다. 개인적 불행이 미술사에는 행운이 됐다는 아이러니는 그의 화폭에 더 시선을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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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레르의 밤 8월 2, 79(1979), 캔버스에 아크릴릭
투레르의 밤 8월 2, 79(1979), 캔버스에 아크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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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1956), 캔버스에 유채
오작교(1956), 캔버스에 유채
전시를 기획한 박미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한 작가의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정의를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진리로 끌어내는 데 있다고 봤을 때 이성자는 그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작가”라며 “한국현대미술사에서 김환기, 박수근 등과도 견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30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 이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몰두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리즈와 ‘우주’ 시리즈가 새로 소개된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는 여정 속에 본 시베리아 극지의 풍경과 원, 반원 등 단순한 기호들로 채운 우주의 풍광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그가 자유와 해방의 본향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02)2188-6000.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8-03-2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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