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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장에 돈 싸들고 오던 시절 거래 리스크 지금은 없나

객장에 돈 싸들고 오던 시절 거래 리스크 지금은 없나

강경민 기자
입력 2018-04-12 11:31
업데이트 2018-04-1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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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금 처리해 주식 먼저 사고 오후 현금 송금”

1998년 증권사 직원 A 씨는 주식 주문 처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개장하면 B 주식을 2천만원어치 매수해 달라고 했다.

일단 계좌에 현금은 없지만, 2천만원이 있는 것처럼 전산으로 ‘가입금’ 처리를 해주면 우선 주식을 매수하고서 오후에 돈을 구해 송금하겠다는 것이다.

A 씨는 그날 현금을 채워 넣으면 된다. 업무가 끝나고서야 A 씨는 곳곳으로 현금을 구하러 다녀 주식 매수 자금을 마련해 계좌로 보냈다.

이처럼 주식 거래는 전산으로 처리돼 실물을 매매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20년 전만 해도 이런 거래가 관행적으로 이뤄졌다. 급하면 먼저 돈이 있는 것처럼 전산처리하고서 실제 현금은 나중에 송금하는 방식이다.

실제 과거 증권사 지점에서 근무한 증권맨은 실적을 올려야 하는 입장이어서, 고객과 신뢰를 바탕으로 금융사고 유발 가능성이 큰 이런 거래의 유혹을 자주 느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 기관투자가가 우선 주식 매입을 위해 계좌에 수억원이 있는 것처럼 가입해주면 오후에 현금을 송금하겠다고 하고선 이를 갚지 않아 금융사고로 이어진 경우가 빈번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12일 “과거엔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주식을 먼저 사고서 나중에 현금을 마련해 송금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금융사고는 사후적이어서 발생하기 전까지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거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지금도 이뤄지는지 알 수 없다. 모든 금융거래가 실물이 오가지 않은 채 전산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증권업계의 전반적인 여건에서는 ‘팻핑거’(자판보다 굵은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다 숫자를 잘못 입력하는 실수)가 아니더라도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배당 사태와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사태도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전산상으로 잘못 배당했고, 이 주식을 받은 증권사 직원들이 시장에 내다 팔면서 주가가 급락한 사건이다.

실재하지 않는 주식이 유통됐다는 건 객장 시절 대금 입금 전에 주식을 매수한 경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현재 대부분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은 모두 삼성증권의 시스템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결국 삼성증권의 배당착오 사태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내가 산 주식이 혹시 유령주식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고객은 “과거에는 원칙적으로 투자자가 객장으로 현금을 싸들고 와야만 거래가 가능했지만 온라인상 거래가 일반화하면서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고와 같은 일이 재발할 우려는 상존한다”고 말했다.

전업 투자가 C 씨도 “10년간 주식투자를 해오면서 여러 증권사와 거래했는데, 시스템이 다 비슷하고 금융사고와 관련한 문자도 여러 번 받은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2000년대 이후 전산시스템이 빠른 속도로 발전한 데다 증권사들도 엄격한 리스크 관리시스템과 자체 감사팀을 가동하고 있어 금융사고 유발 거래 자체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감사시스템이 가동해 가입금으로 인한 금융사고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다만, 전산 거래가 일반적이고 증권사 직원들은 실적 압박에 이런 거래 유혹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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