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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저항한 4천858명 신상카드, 문화재 된다

일제 저항한 4천858명 신상카드, 문화재 된다

신성은 기자
입력 2018-08-07 10:56
업데이트 2018-08-0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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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당사도 등대·윤봉춘 일기도 등록 예고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시위를 주도하고 붙잡힌 유관순(1902∼1920) 모습은 서대문형무소 촬영 사진이 잘 알려졌다.

일제는 수감자가 형무소에 입소하면 정면과 측면 사진을 찍고, 연령·신장·주소·신분·직업·죄명·형기(刑期)를 기록한 신상카드를 제작했다.

3·1 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 유적과 기록물 등록에 속도를 내는 문화재청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감시 대상으로 삼은 인물 4천858명에 대해 작성한 신상카드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7일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한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는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 병합한 1910년부터 1940년대까지 경찰과 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유관순뿐만 아니라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김마리아 등 일제에 저항한 많은 독립운동가에 관한 신상카드가 남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카드에 부착된 인물사진 중에는 희귀한 자료가 많다”며 “당대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을 조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믿을 수 있는 사료”라고 평가했다.

‘완도 소안면 구 당사도 등대’와 ‘윤봉춘 일기’도 함께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당사도는 보길도와 소안도 중간에 있는 작은 섬으로, 등대가 건립된 1909년 소안도 주민과 의병이 항일 의거를 일으켰다. 당시 항일운동은 소안도와 신지도로 퍼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콘크리트로 지은 등대는 하얀색 원통형이며, 높이는 9.4m다. 근대 건축양식과 재료, 의장 수법이 잘 반영됐다.

윤봉춘 일기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 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 항일운동에 가담해 두 차례 옥고를 치른 윤봉춘(1902∼1975)이 1935년부터 1937년까지 기록한 글이다.

3책으로 구성된 이 자료에는 일제강점기 영화계와 영화인에 관한 이야기, 영화 제작기구와 체계, 제작비, 흥행 실적에 관한 내용과 윤봉춘이 영화인으로서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지키려는 의지를 내비친 글이 담겼다.

한편 문화재청은 지난 6월 예고한 ‘도산 안창호 일기’와 ‘관동창의록’(關東倡義錄)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도산 안창호 일기는 안창호(1878∼1938)가 1919년 3·1 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를 지낼 당시 활동상을 담은 일기 3책이다.

일기 작성 시점은 1920년 1월 14일부터 8월 20일까지, 1921년 2월 3일부터 3월 2일까지다. 임시정부가 사용한 용지에 적었으며, 안창호 유족이 보관하다 198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문화재청은 “안창호가 일기를 직접 쓰지는 않은 듯하다”면서도 “임시정부 초창기 활동과 조직 운영, 참여 인사 면모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라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에 있는 관동창의록은 의병 항쟁사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다.

강원도 강릉을 중심으로 함경도와 경상도에서도 활동한 의병장 민용호(1869∼1922)가 경기도 여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중국으로 망명할 때까지 펼친 항전 사실을 기록한 일기와 서한 2책으로 구성됐다.

상권에는 명성황후 시해 직후인 1895년 8월부터 1896년 2월까지, 하권에는 1896년 3월부터 11월까지 활동 내용을 기록했다. 민용호가 국권 회복을 주장하며 지은 국한혼용 가사도 실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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