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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초 인터뷰] 윤지나 박제사 “박제는 여러 기술의 종합선물세트”

[100초 인터뷰] 윤지나 박제사 “박제는 여러 기술의 종합선물세트”

문성호 기자
입력 2018-08-17 10:00
업데이트 2018-08-1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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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장고에서 윤지나 박제사가 직접 제작한 박제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장고에서 윤지나 박제사가 직접 제작한 박제를 살펴보고 있다.
윤지나 박제사가 직접 제작한 말승냥이(회색 늑대) 박제.
윤지나 박제사가 직접 제작한 말승냥이(회색 늑대) 박제.

섬세한 털과 이글거리는 눈빛, 생동감 있는 자세로 뼈다귀를 물고 있는 말승냥이(회색 늑대)는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일 것 같다. 북한 평양중앙동물원에서 들여온 이 말승냥이는 지난해 서울대공원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한 사람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게 됐다. 서울대공원 윤지나(30) 박제사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윤 박제사를 만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배운 윤 박제사는 예중, 예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다. 그는 미술을 공부하면서도 동물이 좋아 전공까지 바꾸려 했다. 어느 날,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멋진 박제 전시를 본 것이 박제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는 그는 “박제라는 것이 제 전공을 살리면서 동물에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제게 딱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소를 전공한 것이 이 일을 하는데 강점이자 곧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포유류 박제와 조각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며 “동물모양 마네킹을 조각할 때와 가죽을 씌운 뒤 얼굴모양을 잡을 때 도움이 많이 된다. 여기에 조소에서 사용하는 재료나 기술, 특히 캐스팅 기법은 박제를 하는 데 비중 있게 쓰인다”며 전공의 작업적 장점을 설명했다.

윤지나 박제사가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장고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지나 박제사가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장고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매년 윤 박제사의 손을 거쳐 가는 동물은 약 10여 마리 정도이다. 박제는 고도의 작업 기술과 인내를 요한다. 이에 대해 그는 “아무래도 손으로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한다. 여러 기술의 복합체일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작업이 수반되기에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며 쉽지 않은 작업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박제는 완성까지 어떤 과정을 거칠까. 먼저 냉동보관 된 동물을 해동한다. 대부분 복부를 절개해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제거한 뒤 부패를 막기 위해 가죽에 약품처리를 한다. 개체 치수에 맞게 제작된 마네킹에 가죽을 씌운 후에는 눈, 코, 입, 귀, 발 등 세부적인 표현을 하고 봉합한다. 그렇게 완성된 박제는 몇 주간 건조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수분기가 완전히 빠지면 색이 바래는데, 그때 색칠을 다시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윤 박제사는 이렇게 공들여 박제하는 이유에 대해 ‘전시와 교육, 연구’가 목적이라고 답했다. 이어 “다만 우리나라는 전시나 교육 등 겉으로 보여 지는 것에만 관심이 많은 편이고, 기초과학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수많은 표본들이 축적되어 데이터가 만들어지면,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특히 골격표본은 예산과 인력이 뒷받침 되는 대로 가능한 한 많이 제작해 후대에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박제의 의미를 전했다.

무엇보다 박제는 희소가치가 높은 동물을 우선으로 한다.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을 제한하는 협약)에 등재된 동물이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물이면 가능한 한 표본으로 남긴다. 하지만 사체 외상이 심하거나 털이 많이 빠진 경우, 또 부패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다면 사실상 표본 제작이 어렵다.

현재 국내 박제사 국가자격증 보유자는 50여 명이다. 그 중 현업에 있는 박제사는 20명 남짓. 자연사박물관과 같은 공공기관 근무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박제사가 근무하는 동물원은 서울대공원이 유일하다. 윤 박제사는 “국가 자격증 없이도 박제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연사박물관 같은 공공기관 박제사로 취직을 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한 것이 일반적이다. 천연기념물은 국가 자격증 없이는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장고에서 윤지나 박제사가 직접 제작한 박제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장고에서 윤지나 박제사가 직접 제작한 박제를 살펴보고 있다.
윤 박제사는 박제에 대해 “여러 기술의 종합선물세트 같다”며 “칼도 다뤄야 하고, 가죽가공, 목공, 용접, 바느질, 색칠, 조각, 캐스팅 등 다양한 종류의 작업이 수반된다. 여기에 손재주도 좋아야 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재료에 대한 정보력도 필요하다. 얼마나 더 좋은 재료와 약품을 사용하느냐가 결과물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박제는 “정해진 방법이나 규칙이 없다는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동물 종류 혹은 선택한 포즈에 따라 많은 방법이 있는 만큼,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 박제사의 실력인 것 같다”며 “정해진 방법이 없다는 것, 그게 박제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장고에서 윤지나 박제사가 직접 제작한 박제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장고에서 윤지나 박제사가 직접 제작한 박제를 살펴보고 있다.
윤 박제사는 예비사육사들에게도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그는 “평소 동물을 많이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고 행동, 생태, 근골격계 해부학 등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며 “박제에 대한 정보는 외국에 더 많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고 연구하길 바란다”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박제를 직업으로 삼으면, 돈 벌기가 어려우니 정말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며 작업적 즐거움과 보람, 동물을 향한 애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윤 박제사는 박제된 동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기를 부탁했다. “박제된 동물들을 보고 그저 불쌍하다고만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죽어서도 눈감지 못한다고 감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죽은 동물도 자연이 남겨준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기에 전시·교육·연구를 위해 한 번 더 활용해 그 가치를 찾고,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임을 알아주시길 부탁한다”며 “하나의 연구자료 또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글·영상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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