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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미스터 유엔’ 아난의 유산/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미스터 유엔’ 아난의 유산/이순녀 논설위원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18-08-19 22:28
업데이트 2018-08-1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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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도 엄청난 도전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이 직업을 많이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2006년 9월 19일 유엔 총회장.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개막사 말미에 고별 인사를 전하자 회원국 대표들과 각국 정상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해 연말 퇴임을 앞두고 이날 유엔 총회에서 한 마지막 공식 연설에서 아난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수단의 다르푸르 등 고통에 시달리는 분쟁 지역을 언급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평직원 출신 첫 사무총장이자 반평생 넘는 재직 기간 등으로 ‘미스터 유엔’으로 불렸던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8일(현시지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97년부터 10년간 ‘세계 정부’의 수장으로서 안으로는 유엔의 개혁을 이끌고, 밖으로는 평화 전도사로 이름을 높였던 그의 별세 소식에 세계는 깊은 애도를 표했다.

1938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가나에서 태어난 고인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62년 세계보건기구 예산·행정 담당관으로 유엔에 발을 디뎠다. 그로부터 35년 만인 1997년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재임 동안 빈곤 퇴치와 에이즈 확산 방지, 분쟁지역 중재 등에 특히 힘을 쏟았다. 1998년 유엔사찰단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사담 후세인과 만나는 등 누구보다 독재자·군벌 등과 직접 협상에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에는 유엔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명예로운 꽃길만 걸은 건 아니다. 2004년 아들 코조 아난이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과 관련된 스위스의 한 기업체로부터 불법 자금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돼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재임 내내 ‘친미 사무총장’이라는 비판에 시달렸고, 의욕적으로 추진한 유엔 개혁의 성과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고인의 진가는 오히려 퇴임 뒤에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많다. 퇴임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딴 ‘코피아난재단’을 세웠다. ‘더 공평한, 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라는 슬로건 아래 기근 퇴치, 청소년 리더십 증진,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 등 인류 공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13년부터는 세계 원로정치인 모임인 ‘엘더스’를 이끌어 왔다. 이 단체는 지난 4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서한을 청와대에 보내기도 했다. 세계 평화를 향한 고인의 굳은 신념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남다른 열정과 헌신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힘썼던 고인의 유산을 되새기며 명복을 빈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2018-08-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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