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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민의 노견일기] 늙은 강아지 행국이와 함께 산다는 것

[김유민의 노견일기] 늙은 강아지 행국이와 함께 산다는 것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8-08-30 14:24
업데이트 2018-08-3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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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견일기] 나의 늙은 강아지, 아기 행국이는 어느새 백내장의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봅니다.
[노견일기] 나의 늙은 강아지, 아기 행국이는 어느새 백내장의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봅니다.
2003년 8월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된 요크셔테리어를 만났습니다. 피부병이 있는 녀석은 주인도 없이 병원에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입양을 위해 멀리 청주까지 갔건만, 막상 녀석을 보니 망설여졌습니다. 지저분한 털 상태에 예쁘지 않은 얼굴. 그냥 돌아설까 하는 마음을 안 건지 애처로운 표정을 하고 쳐다보던 눈망울.

‘나를 버리지 마세요. 데려가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어 품에 안았습니다. 미용을 하니 꼬질꼬질한 모습은 사라지고 잘생긴 얼굴이 나오더라고요.

함께 행복하자고 ‘행복’이란 이름을 지었다가 조금 특별하게 바꿔주고 싶어서 한문을 찾아서 ‘행국’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행복할 ‘행’, 움켜잡을 ‘국’ 그렇게 15년을 행국이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행국이는, 별 것 아닌 나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볼일을 가리는 것부터 자율급식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있는 저의 걱정을 덜어주는 똑똑하고 애교 많은 강아지입니다. 감정은 또 어찌나 잘 읽는 지요. 속상한 일로 울고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 눈물을 핥아주고, 꼬리를 흔들면 애교를 부려줍니다. 크게 아픈 곳 없이 12년을 보냈습니다.
[노견일기] 늘 곁을 내어주는, 사랑스러운 나의 늙은 강아지
[노견일기] 늘 곁을 내어주는, 사랑스러운 나의 늙은 강아지
행국이 덕분에 편하게 지냈는데도 이사 때마다 집을 구하기 쉽지 않았고, 친구들처럼 장기간 여행을 하는 것은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참,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간식을 던져줘도 반응이 없어 ‘늙어서 귀찮은 건가’ 싶었는데 실명이었습니다. 망막위축증에 백내장이 온 행국이의 양쪽 눈은 빛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화장실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다치는 행국이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고 막막했습니다.

울타리를 만들고 온 집안에 안전가드를 붙여놓았지만 화장실 안에서 또 부딪히고... 패드를 사서 교육을 시작했지만 평생 화장실에 볼일을 보던 행국이는 울기만 했습니다. 울타리 안에 패드를 가득 깔고, 행국이가 답답하지 않게 했습니다.

혼자 있을 녀석이 걱정돼 설치한 홈CCTV. 행국이는 제가 없는 동안 뱅글뱅글 돌고 치매가 온 듯 이상했습니다. 회사에서 10분 거리의 집이었기에 두 달 가까이 잠을 줄여가며, 일하다 달려오기도 여러 번. 동물병원에서는 안락사를 생각해보라고 말했습니다.

약한 마음으로는 ‘이렇게 늙고 병든 강아지를 나만큼 사랑으로 키워줄 곳은 없는데 고통 없이 떠나보내는 것을 어떨까’란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행국이가 힘든 게 아니라 행국이를 돌보는 내가 힘들어서 행국이를 보내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국이는 안락사를 고민했던 못난 제 마음을 아는 건지, 점점 안정을 찾았습니다. 아직은 함께하고 싶다고, 기운차려 보겠다고 하는 것 같아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행국이는 제 손이 닳도록 핥아줍니다. 그러면 저는 ‘행국아, 사랑해. 더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자’ 매일 말해줍니다.
[노견일기]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소중합니다. 제대로 된 사진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노견일기]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소중합니다. 제대로 된 사진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20대에 만난 행국이.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소중한 생명이 알려준 마음. 영원히 새끼강아지 같던 행국이는 늙었고, 그만큼 저는 성숙했습니다.

함께하는 사진을 남기고 싶어 스튜디오에 갔습니다. 갑자기 아플까봐 그렇게 영영 떠날까봐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의 이별을 걱정하기보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에 감사하며 사랑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별 준비가 또 다른 가족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 행국이엄마 지원씨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
김유민의 노견일기 - 늙고 아픈 동물이 버림받지 않기를
김유민의 노견일기 - 늙고 아픈 동물이 버림받지 않기를 http://blog.naver.com/y_mint 인스타 olddogdiary 페이스북 olddogfamily
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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