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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향기 그리워 고향의 온기 그리다

북녘의 향기 그리워 고향의 온기 그리다

이슬기 기자
입력 2018-10-31 20:44
업데이트 2018-10-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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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 화가 이동표 ‘달에 비친’展

인민군·국군으로 살아야 했던 미술학도
6·25전쟁의 아픔 잿빛 화폭에 담아
통일 염원은 화려한 색채로 그려내
매번 다른 상상 속 어머니 담은 작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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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동표 작가는 산후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얼굴조차 모르는 어머니를 평생 그렸다. ‘병상의 어머니’(1995) 속 아이를 보듬는 어머니의 손이 유독 크고 두껍다. ②6·25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월남해 국군으로 입대한 본인의 경험을 그린 ‘일인이역 골육상쟁’(2000). ③화려한 색채와 인물들의 밝은 표정이 돋보이는 ‘통일이다. 고향가자’(2013).
①이동표 작가는 산후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얼굴조차 모르는 어머니를 평생 그렸다. ‘병상의 어머니’(1995) 속 아이를 보듬는 어머니의 손이 유독 크고 두껍다. ②6·25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월남해 국군으로 입대한 본인의 경험을 그린 ‘일인이역 골육상쟁’(2000). ③화려한 색채와 인물들의 밝은 표정이 돋보이는 ‘통일이다. 고향가자’(2013).
“젊은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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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표 화가
이동표 화가
고향을 떠올리던 여든여섯의 화가는 말 중간중간 젊은 기자들의 눈치를 봤다. 이동표 화가의 고향은 황해도 벽성군 동운면 주산리. 고향 땅 저수지를 떠올리며 비슷한 풍경의 경기도 양평 땅에 자리잡았다는 화가다. 해방 소식도 고향 저수지에서 멱 감다가 봤다는 화가는 한국전쟁 이래 이날 입때껏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2일까지 열리는 이동표 초대전 ‘달에 비친’전. 북녘에서 태어나 해방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60여년 실향민으로 살기까지, 노 화가의 삶이 오롯이 담긴 전시는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다.

그는 오랜 시간 어머니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화가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산후병으로 저세상 사람이 됐다. 어머니와 일면식도 없는 그는 오로지 상상에 의지해 어머니를 그렸다. 아이를 보듬는 어머니의 손이 유독 크고 두껍다. 화가는 “자식과 차마 헤어지지 못하겠는 마음에 손이 이렇게 커졌다고 누가 그러대”라고 했다. 화폭 속 어머니는 그날그날 상상에 따라 조금씩은 다른 모습이다.

미술학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6·25전쟁을 소재로 한 역사화는 유독 잿빛이다. ‘일인이역 골육 상쟁’(2000) 속 국군과 인민군은 모두 화가 자신이다. 1947년 해주예술학교 미술과에 입학해 그림을 그리던 소년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1·4 후퇴 때 월남해 수용소 생활을 거친 후 이번에는 국군으로 입대해 신산한 삶을 이어 갔다. 머리에 지게에 짐을 이고 지고 떠나는 ‘6·25전쟁과 피난 행렬’(2004), 총부리를 앞에 두고 부르짖는 ‘고향에 가고 싶다’(2005)는 모두 그때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10년 전서부터는 톤이 좀 바뀌었다. “6·25만 그리면 뭐하냔 말이야. 집에 가야 하는데.” 칠순 중반에 얻은 깨달음이었다. ‘통일이다. 고향 가자’라는 제목의 연작 시리즈는 색채부터가 빨강, 주황 일색으로 화사하다. 인물들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다함께 모여 옛집 찾아가세’, ‘만세 부르며 이날을 기뻐하세’ 등 깨알같이 글귀도 많다. “습관적으로 그러는데, 평론가 김윤환 선생이 보고 ‘더 표현하고 싶은 말을 글로 했다’고 하더라고. 내 마음을 더 쏟아내고 싶은데 (그림만으론) 한계가 있잖아.” 통일이 코앞인 양 일견 다급함도 느껴지는 그림. 최근의 남북 해빙무드가 화가의 마음을 더 들뜨게 한 걸까. “예술가들은 뭐 어느 시기에도 좋고 나쁘고가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 고향 가는 길목에서 한 거지 뭐.”

화실 한켠에 고향 땅을 확대한 구글 어스 지도를 두었다는 그. 생전에 고향 땅에 갈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화가는 말했다. “어쩌면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가면 늦지 않잖아. 건강하고 그러니까. 실은 (꿈에서) 엊저녁에 고향집에 갔어. 집은 없는데 석류가 이렇게 큰 게 있어 가지고 가서 까먹고….” 고향의 추억이, 실향의 아픔이 그에겐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런 그가 눈치를 보게 하는 젊은 사람이라는 게 되레 미안해졌다.

글 사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8-11-0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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