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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사라져가는 소수 언어들 외계 물체 이름으로 보존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사라져가는 소수 언어들 외계 물체 이름으로 보존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9-01-16 17:40
업데이트 2019-01-17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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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계에 부는 토착 언어 프로젝트

영화 ‘말모이’는 사라질 뻔했던 한글을 지키려는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분투를 그리고 있다. 최근에는 천문학자들이 소수 언어가 되고 있는 하와이어 보존을 위해 천체의 이름에 하와이어를 붙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말모이’는 사라질 뻔했던 한글을 지키려는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분투를 그리고 있다. 최근에는 천문학자들이 소수 언어가 되고 있는 하와이어 보존을 위해 천체의 이름에 하와이어를 붙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9일 개봉해 닷새 만에 100만 관객을 넘겨 화제가 된 영화가 있습니다. ‘말모이’입니다. 한국어 말살을 획책하는 일제 탄압에 맞서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허구의 요소가 많지만 영화에 나온 것처럼 자칫 사라질 뻔했던 한글과 방언들이 주시경 선생이나 최현배 선생 같은 한글 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살아남게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언어는 약 7000여개에 이르지만 세계 인구 97%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중 4%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6%의 언어는 세계 인구의 3%만 쓰는 소수 언어입니다. 사용하는 사람이 줄고 계승되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언어들입니다. 우리 제주도 방언 역시 세대 간 전승 없이 노인층만 주로 사용하고 있어 소멸될 가능성이 높은 토착 언어로 분류돼 있는 상황입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천문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새로 발견된 외계물체들에 소수 언어로 이름을 붙여 언어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지난 11일자에 소개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2017년 10월 19일 하와이대 연구진이 판스타스1 망원경으로 포착한 정체불명의 외계물체에서 시작됐습니다. 얼음이나 암석으로 구성된 소행성이나 혜성과는 다르고 표면에 유기물의 흔적까지 발견된 이 물체는 외계 문명에서 보내온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먼 우주에서 날아와 태양계를 지나쳐간 ‘성간(星間) 물체’라고 밝혀졌지만 정확한 정체와 어디서부터 날아왔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천문학계는 하와이대에서 처음 발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하와이어로 ‘먼 곳에서 온 메신저’라는 의미의 ‘오무아무아’(Oumuamua 1I/2017 U1)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2017년 10월 19일 미국 하와이대 연구진은 매우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통과하는 외계천체를 처음 발견했다. 최초의 인터스텔라(성간) 천체인 이 물체는 이후 ‘먼 곳에서 온 메신저’라는 의미를 가진 하와이어인 ‘오무아무아’라고 이름 붙여졌다.  유럽남방천문대(ESO) 제공
2017년 10월 19일 미국 하와이대 연구진은 매우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통과하는 외계천체를 처음 발견했다. 최초의 인터스텔라(성간) 천체인 이 물체는 이후 ‘먼 곳에서 온 메신저’라는 의미를 가진 하와이어인 ‘오무아무아’라고 이름 붙여졌다.
유럽남방천문대(ESO) 제공
이를 계기로 하와이의 천문 및 과학문화 교육단체는 지난 7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미국천문학회에서 외계물체에 하와이어를 붙이는 ‘아후아헤이노아’(A Hua He Inoa) 프로젝트를 공개했습니다. 아후아헤이노아는 하와이 원주민들이 사람이나 물체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입니다. 천체 이름을 승인해주는 국제천문연맹(IAU)에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본토에서 3700㎞ 떨어져 있고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된 하와이도 고유한 언어가 있지만 영어에 밀려 하와이주 전체 인구의 0.1%만이 사용하고 있어 소멸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하와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고 공해 없는 맑은 하늘이라는 천혜의 조건 덕분에 천문대와 다양한 천체 관측기구들이 있는 만큼 아후아헤이노아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높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대(UCSF) 천문학자 아파나 벤카테슨 교수는 “이름은 단순히 뭔가를 부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 프로젝트는 신세대 과학자들에게 인류 공동유산인 언어의 소중함과 필요성에 대해 가르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는 소수 언어와 토착 언어를 보존하기 위해 유엔이 지정한 ‘국제 원주민 언어의 해’(IYIL2019)입니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말하는 이의 생각과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소수 언어, 토착 언어 보존은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문화 전수·계승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과학이 이같이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문사회와 과학의 ‘융합연구’를 어렵게만 생각하는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edmondy@seoul.co.kr
2019-01-1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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