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번뇌에 물들지 않은, 행복의 나라… 가난하지만 넉넉한, 말간 얼굴들

번뇌에 물들지 않은, 행복의 나라… 가난하지만 넉넉한, 말간 얼굴들

입력 2019-02-21 17:32
업데이트 2019-02-22 00:31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행복지수 세계 1위’ 부탄을 가다

이미지 확대
부탄 내 여러 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따시최종. 행정부와 사법부, 지역 관할 사찰이 함께 들어선 복합 청사다.
부탄 내 여러 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따시최종. 행정부와 사법부, 지역 관할 사찰이 함께 들어선 복합 청사다.
태국 방콕에서 부탄행 항공기로 갈아탄 지 약 세 시간 반. 창 밖으로 만년설이 쌓인 히말라야가 보였다. 부탄이었다. 비행기는 험준한 산골짜기 사이를 파고들며 곡예하듯 비행해 파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해발 2235m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중 한 곳이다.

●곳곳 험준한 산골짜기·비포장 도로·아찔한 협곡

부탄 여행의 첫 목적지는 수도 팀푸였다. 공항에서 팀푸로 가는 길, 비포장 도로는 아찔한 협곡 사이를 지났다. 실수하면 아득한 벼랑 아래로 차는 굴러떨어질 것이다. 가이드는 부탄의 길이 대부분 이렇다고 설명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버스는 산등성이를 힘겹게 오른다. 부탄 땅의 대부분은 비탈과 협곡이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평지와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초지는 국토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시내로 들어서자 극심한 교통정체로 차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팀푸에서 반나절을 보내며 받은 부탄의 첫인상은 부탄이라는 나라가 상상했던 것처럼 신비하고 고요한 도시가 아니라는 것. 팀푸에는 멋진 손동작으로 수신호를 하는 경찰관이 있었고, 맛있는 에스프레소와 라테를 파는 카페가 있었고(전통 복장을 입은 금발의 외국인들이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좀 신비로웠다), 부탄 록밴드의 공연을 보며 춤을 출 수 있는 클럽도 성업 중이었고, 잘생긴 바텐더가 만들어 주는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바도 있었다.
이미지 확대
‘대행복의 궁전’이라는 뜻의 푸나카종. 부탄 내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대행복의 궁전’이라는 뜻의 푸나카종. 부탄 내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부탄에서의 어리둥절한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본격적인 여행에 나섰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팀푸의 따시최종. 종(Dzong)은 행정과 종교를 관할하는 성을 일컫는 말이다. 티베트 침공에 대비해 세웠는데 지금은 행정부와 사법부, 지역 관할 사찰이 함께 들어선 부탄만의 독특한 복합 청사다. 따시최종은 부탄에 있는 수십 개의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정부청사 역할을 한다. 2008년 이전에는 궁궐로 사용됐으나 이후로는 국왕의 집무실이 있는 정부청사 및 사원으로 용도가 변했다. 4대 왕이 과감히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면서부터 일어난 변화다. 따시최종과 함께 꼭 가봐야 할 곳은 푸나카에 자리한 푸나카종이다. ‘대행복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부탄 전역의 수십 개 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이미지 확대
부탄 전통 옷을 입은 부부.
부탄 전통 옷을 입은 부부.
●전통 옷을 입고 술을 즐기는 부탄 사람들

부탄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 복장을 입는다. 남자는 우리 한복과 비슷한 ‘고’를 입고 서양식 구두를 신는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벅지에 이르는 X자형 띠인 ‘캄니’를 두른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원이나 정부 기관에 갈 때 착용한다. 일종의 예를 갖춘 정장이다. 여자는 복사뼈까지 내려오는 치마인 ‘키라’를 입는다. 화려한 색으로 치장된 천에는 독특한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다. 공무원과 호텔 종업원 등은 반드시 전통 복장을 착용해야 한다.
이미지 확대
우리의 소주와 비슷한 증류주인 전통술 아락.
우리의 소주와 비슷한 증류주인 전통술 아락.
이미지 확대
손님 접대용으로 많이 내놓는 전통차 수자.
손님 접대용으로 많이 내놓는 전통차 수자.
이미지 확대
빨간 고추에 산양 치즈를 더한 양념인 에마다씨.
빨간 고추에 산양 치즈를 더한 양념인 에마다씨.
이미지 확대
부탄 맥주 ‘드룩 비어’. 우리나라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
부탄 맥주 ‘드룩 비어’. 우리나라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
부탄 사람들의 식탁은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밥에 고기 요리를 포함한 서너 가지 반찬을 곁들인다. ‘에마다씨’는 빨간 고추에 산양 치즈를 더한 음식으로 우리 입맛에도 딱 맞는다. 고기 요리도 즐긴다. 시내에는 가공된 고기를 수입해 판매하는 정육점도 많다. 불교 국가인 부탄에서는 살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고기를 모두 인도에서 수입한다.

부탄 사람들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술을 즐긴다. 우리의 소주와 비슷한 증류주인 아락을 직접 담가 먹기도 하고 위스키와 맥주 등도 많이 마신다. 부탄 맥주인 드룩 비어는 우리나라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 부탄은 2007년부터 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한 세계 최초의 금연 국가지만 외국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자유롭게 흡연할 수 있다.

운 좋게 부탄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레포츠인 활쏘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부탄 말로 ‘다체’라고 부르는 이 활쏘기는 부탄의 국민 스포츠다. 표적과의 거리는 무려 140~150m. 올림픽 양궁 종목 50m의 세 배에 이른다. 형식은 양궁보다는 국궁과 닮았다. 전통 의상을 입은 선수들이 마주 보고 과녁에 차례로 활을 쏜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거리에 있는 과녁을 기가 막히게 맞히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점수가 잘 나오면 같은 편 선수들이 환호를 보내고, 못 나오면 상대편 선수들이 놀리는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이미지 확대
부탄 서부 지역 왕디에 자리한 네젤강 사원의 스님들. 부탄의 불교는 티베트 불교에 인도의 불교가 더해져 주문과 주술을 중요하게 여긴다.
부탄 서부 지역 왕디에 자리한 네젤강 사원의 스님들. 부탄의 불교는 티베트 불교에 인도의 불교가 더해져 주문과 주술을 중요하게 여긴다.
●불심으로 가득한 나라

부탄은 불교 국가다. 국민 모두가 불교신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거리 곳곳에는 불경을 적은 깃발인 룽다가 펄럭이고 사람들은 곳곳에 설치된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다. 부탄의 불교는 8세기쯤 인도 북부에서 태어난 파드마삼바바가 전했다.
이미지 확대
해발 3140m 까마득한 절벽에 들어선 탁상곰파(탁상사원).
해발 3140m 까마득한 절벽에 들어선 탁상곰파(탁상사원).
가장 유명한 사원은 ‘탁상곰파’(탁상사원)다. 부탄을 광고하는 포스터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8세기 호랑이를 타고 날아온 파드마삼바바가 아득한 절벽 위에 이 절을 짓고 수도했다고 전한다. 해발 3140m에 자리잡고 있다. 탁상은 부탄말로 ‘호랑이의 둥지’라는 뜻이다.
이미지 확대
3대 국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탑인 메모리얼초르텐을 찾은 순례자들.
3대 국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탑인 메모리얼초르텐을 찾은 순례자들.
팀푸 중앙에는 3대 국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거대한 탑인 ‘메모리얼초르텐’이 있는데 팀푸 사람들은 출근할 때 이 탑을 세 바퀴 돌고, 퇴근할 때 다시 세 바퀴 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토록 간절한 걸음과 아득한 눈빛을 본 적이 없고, 그토록 행복한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부탄 서부 지역 왕디에 자리한 네젤강 사원은 부탄 불교의 시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부탄의 불교는 티베트 불교에 인도의 불교가 더해진 것으로 주문과 주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밀교다. 파드마삼바바는 경전을 부탄 곳곳에 숨겨 놓았는데 네젤강 사원은 그 가운데 하나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왕디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한 사원은 고요하면서도 장엄하게 서 있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사원은 아마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그다지 모습이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곳에 머물며 수행하는 스님들이 읊조리는 경전 역시 당시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 확대
불경을 적어 놓은 룽다가 다리에 가득 매달려 있다.
불경을 적어 놓은 룽다가 다리에 가득 매달려 있다.
치미사원도 재미있는 곳이다. 푸나카 치미 마을에 있는 남근을 숭배하는 독특한 사원이다. 이 사원에는 기이한 행적으로 유명한 둑파퀸리(1455~1529)라는 스님의 남근이 모셔져 있다. ‘5000명의 여자를 취한 자’, ‘히말라야의 미친 걸승‘으로 불렸던 둑파퀸리는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깨달았다는 독특한 수행법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둑파퀸리는 입적하면서 자신의 남근을 잘라서 그 속에 영험한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이 남근은 사원에 잘 모셔져 있는데 아기를 낳지 못하는 이들에게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사상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책 ‘사색기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역시 이 세상에는 가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 직접 그 공간에 몸을 두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그런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육체를 그 공간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

흔히들 부탄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한다. 행복지수 세계 1위. 국민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다. 1999년 부탄의 국가행복지수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행복을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탄행복연구소’ 도지펜졸 소장은 “부탄은 국민의 행복을 모든 정책의 중심에 놓고 국가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어떤 정책도 국민의 행복과 부합하지 않으면 시행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책은 10~15명으로 구성된 ‘국민총행복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총점 78점을 얻지 못하면 자동으로 폐기됩니다.” 이를 위해 부탄 정부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정책을 펴고 있다. 천연자원을 보존하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헌법에 숲을 전국토의 60% 이상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가축 방목과 벌채, 채광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부탄은 가난한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약 340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탄을 여행해 보면 이들이 절대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넉넉하고 친절한 부탄 사람들 앞에서 한국의 내가 지금까지 가난하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절대로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죠.” 도지펜졸 소장의 말이 부탄 여행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 여행수첩

부탄은 우리나라 면적의 약 40%,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한 넓이다. 언어는 종카어와 영어. 통화는 눌트룸을 사용한다. 1눌트룸은 약 17원. 달러로 바꿔 가서 현지에서 환전해야 한다. ATM 가능.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로 6~8월은 우기다. 부탄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방콕이나 델리, 카트만두를 경유해야 한다. 부탄은 개별 여행이 금지돼 있다. 1일 최소 200달러의 체류비를 내고 부탄 정부가 지정한 여행사 패키지 투어에 참가해야 한다. 체류비에는 숙박, 교통, 가이드, 식사 등이 포함돼 있다. 부탄문화원(02-518-5012)은 다양한 행사와 수교 프로그램을 진행, 운영한다. 여행에 관한 문의는 부탄문화원으로 하면 된다.
2019-02-22 33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