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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지식이 권력이다/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열린세상] 지식이 권력이다/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입력 2019-03-19 22:12
업데이트 2019-03-2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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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세계의 도서관 중 가장 높은 24층 106m 높이를 자랑하는 중국 상하이도서관의 중앙 정원에는 큼직한 공자상이 서 있고, 그 옆에는 조경술을 활용한 ‘구지’(求知·지식을 추구하라)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세계의 도서관을 많이 가보았지만 이곳처럼 지식의 가치를 강조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복도를 걷다 보니 ‘아는 것이 힘이다’(지식이 권력이다) 같은 의미의 문장을 세계 20여개 언어로 새겨 놓은 커다란 벽이 나타났다. 한국어는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대형 화분을 밀쳐서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식은 결코 힘이다’라고 잘못 새겨져 있기에 고쳐 주었다. 아무튼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면에서는 잊히지 않는 곳이다.

옛날부터 지식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현대는 지식·정보혁명의 시대이므로 지식의 역할이 훨씬 중요해졌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인 2005년 전미국도서관대회 기조연설에서 “현시대는 지식이 권력이 되고 성공의 관문이 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나온다”고 말할 정도로 도서관과 지식의 중요성을 아는 인물이다. 미국인들은 도시를 조성할 때 학교, 경찰서, 소방서와 함께 도서관의 위치를 먼저 정할 정도로 지식의 전당인 도서관을 중시한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이 장기적 발전에 실패한 것은 유목민족의 특성상 늘 옮겨 다니느라 지식을 축적, 재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제도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랜 감옥 생활을 절호의 독서 기회로 활용함으로써 ‘지식의 힘’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무장해 논리와 지성이 결여된 한국 정치에서 독보적 위상을 확보했으며, 결국 그 힘으로 대통령에까지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만년에 몇 시간씩 신장 투석을 할 때도 책 읽어 주는 사람을 통해 독서를 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의 소유자였다.

가난하여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닌 링컨은 책만 보면 닥치는 대로 읽은 덕에 오히려 명연설을 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대통령까지 됐다. 의원 시절에는 의회도서관에서 마음껏 독서를 했으며, 도서관에서 터득한 군사학 지식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내면의 힘이 됐다고 한다. 미국 4대 대통령 매디슨은 “지식은 영원히 무지를 지배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통치자가 되려는 국민은 지식이 주는 힘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한복판 권력의 심장부 크렘린 바로 앞에는 러시아의 지적 무기고 역할을 하는 국가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도서관에는 크렘린을 위해 ‘지식 서비스’를 해 주는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권력과 지식은 밀접하게 공존하고 있다. 크렘린과 국가도서관은 지하도로 연결돼 있다.

세종과 정조도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왕실 도서관인 집현전과 규장각을 각각 운용했다. 세자(세손) 시절 선왕으로부터 ‘건강을 해치니 책을 그만 읽어라’는 금서령(禁書令)을 받을 정도로 지독한 독서광이었으며, 학문이 신하들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태종이 양녕을 폐세자한 후 충녕을 세자로 지명하면서 교지를 통해 밝힌 이유는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밤새도록 독서를 한다’(好學終夜讀書·호학종야독서)는 것이었다.

정조 때 최고 지식인들의 집합소였던 규장각이 최고 권부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개혁은 ‘칼로 하는 개혁’과 ‘붓으로 하는 개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정조는 규장각을 활용해 학문과 지식의 힘으로 개혁했다. 칼을 이용한 개혁은 주관적, 과거지향적인 반면 붓을 이용한 개혁은 객관적, 미래지향적이다. 이런 바람직한 개혁은 정조 자신이 뛰어난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식에는 비약이 없다. 어느 누구라도 날마다 하나둘씩 축적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기하학의 대가 유클리드에게 왕이 비결을 묻자 “학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열심히 공부하는 것 외에 달리 비결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젊은 시절 얻은 지식은 두고두고 평생을 써먹는다. 이 불확실한 세상에 결코 녹슬지 않을 최고의 무기인 ‘지식근육’으로 무장하라.
2019-03-20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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