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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의 활발발] 저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법인의 활발발] 저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입력 2019-07-15 17:40
업데이트 2019-07-1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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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인연입니다.” 어느 봉사 모임의 표어를 보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따뜻하고 신선한 긍정의 감정이 가슴에 스민다. 이와 반대로 “너하고는 참 지독한 악연이다”라는 말에는 그만 우울해진다. 불교의 전문용어라고 할 수 있는 인연이라는 말을 우리는 삶터에서 일상의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자’, ‘옷깃만 스쳐도 삼천 생을 함께 살았다’라는 말은 만남의 소중함을 뜻한다. 또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 보네요’라는 선언은 관계의 어려움을 뜻한다.

관계, 즉 사이 맺음의 끈이 얽히고, 꼬이고, 떨어지는 현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좋은 사이도 어떤 까닭으로 말미암아 틈이 벌어지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이가 된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어쩔 수 없는 까닭으로 함께 만남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단순한 질문을 한다. 고통은 피해 갈 수 있는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통을 불러오는 갈등과 사건들은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부처님과 역대 성인들의 일생을 살펴본다. 온갖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난 그분들에게는 과연 악연이 없었을까? 물론 진리를 탐구하고 깨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구했으니 좋은 인연들이 모였을 것이다. 그러나 경전의 기록을 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극단적으로 부처님과 예수님을 배신하고 반역한 제자들이 있었다. 제바닷타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교단의 실권을 장악하려고 부처님을 음해하고 등을 돌렸다. 가롯 유다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제자였다.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내가 원하지 않은 악연을 피해 갈 수 없음을 역사와 현실은 말하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법인 대흥사 일지암 주지
법인 대흥사 일지암 주지
석가모니는 깨달음 이후 45년을 대중과 함께 수행하고 가르침을 전해 왔다. 긴 세월 동안 적지 않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개인적인 일탈이 있었다. 함께 살아가는 승단에서, 혹은 저잣거리에서 세속인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제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적인 일탈이 발생하면 그것을 경계하는 계율이 생겨났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갈등과 시비가 발생하면 조정하고 해결하는 멸쟁법(滅爭法)이라는 매뉴얼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사는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사건과 사고, 그리고 갈등과 시비를 그분들은 어떻게 대면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먼저 제자들이 저마다 온갖 사연을 가지고 서로 화내고 미워하고 공동체의 화해 분위기를 무너뜨릴 때, 부처님과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분노와 미움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마음은 이미 연민과 자애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이 부처와 중생을 가르는 지점이 될 것이다. 갈등과 시비를 불러오는 사건은 늘 부처와 중생에게 똑같이 다가온다. 저마다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른 중생들이 다른 생각과 주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갈등을 대면하는 바로 그 순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지점에서 천당과 지옥, 부처와 중생의 길이 드러날 것이다.

명색이 수행자인 나도 때로는 갈등과 시비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 처신이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나름 조심하고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오해와 왜곡과 비난을 받기도 한다. 나는 이런 의도로 이렇게 말하고 행동했는데 다른 사람은 저런 의도라고 달리 해석하고 서운해한다.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할까? 먼저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에 내 생각을 비워 놓고 관심을 가진다. 예전에는 내 생각이 옳다고 설득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먼저 경청에 집중한다. 진지하게 그의 말에 귀를 열어 놓으면 대략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럴 만한 이유를 공감하면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진다.

내 경험을 통한 갈등 조정법은 이렇다. 생각 내려놓기, 진지한 경청과 공감, 그리고 침착한 대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생각에 힘을 넣는 설득은 상대방이 설득당해야 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설득보다는 공감이 먼저다.
2019-07-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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