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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박이 꼰대, 직업이 부장…미운 86세대

붙박이 꼰대, 직업이 부장…미운 86세대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19-07-21 22:30
업데이트 2019-07-22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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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s 신주류가 떴다] “노동시장 독점에 청년들 피해”

“지금 관리자급인 윗세대는 이미 한참 전부터 관리자였다. 팀의 중간급이 된 지금이나 과거 막내 때나 그들 밑에서 똑같은 일은 한다. 실무는 물론 후배 교육까지 다 내 몫이 돼 버렸다.”(1981년생 이모씨)

“선배들은 ‘요즘 애들은 도전의식이 없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윗세대보다 훨씬 많이 도전을 했고 훨씬 많이 실패했다.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지 못하면 말하지 마라.”(1991년생 정모씨)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의 반감은 주로 ‘86세대’(1960년대생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로 향한다.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뜨거운 피’ 86세대들은 왜 꼰대로 몰렸을까.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산업화 세대가 첫 삽을 뜨고 86세대의 리더들이 완성한 한국형 위계구조의 희생자가 바로 지금의 청년들”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올해 초 86세대가 노동시장을 장기 독점하면서 이들이 만든 위계구조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불평등을 키웠고 결국 그 피해를 청년(특히 비정규직)들이 고스란히 입고 있다고 지적한 논문을 발표했다.

민주화를 이뤄낸 86세대는 정치권은 물론 노동시장에도 대거 진입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장기 경제호황과 세계화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1997년 외환위기로 산업화·베이비부머 세대(1940~50년대생)가 일자리에서 쫓겨나자 86세대들이 빠르게 이 자리를 차지해 지금까지 점유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위도 아래도 없이 20여년 이상 조직을 장악하다 보니 권력구조가 매우 단단해졌고 이들의 위치가 다음 세대로 옮겨지지 않으면서 ‘역피라미드형’ 노동시장이 만들어졌다. 이런 구조가 일자리 진입로를 좁혀 청년들이 더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게 됐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옛날에는 대학교 학과사무실에 널린 입사지원서 중 아무거나 골라서 입사했다”거나 “월급을 아껴 아파트를 샀다”는 86세대의 경험담은 20~30대에겐 별나라 이야기다. 청년층이 보기에 기성세대는 ‘직업이 부장이거나 임원’인 사람들일 뿐이다. 강모(33)씨는 “아직도 자신들의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참 뜨겁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86세대가 정작 조직에선 꼰대질로 후배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그나마 80년대생들은 ‘나도 언젠가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86세대들의 권위주의를 참고 버텼는데, 90년대생은 그보다 더 열악한 노동시장 환경 탓에 미래에 대한 기대 수준이 매우 낮아 86세대가 만들어 놓은 위계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86세대들이 누린 혜택이 어떤 형태로든 다음 세대로 이전돼야 한다”면서 “특히 노동의 대가가 적절히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19-07-2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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