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말 이후에는 10곳 중 7곳…경영평가 인센티브와 가점 때문
120개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모두 확대도입한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 거친 것으로 파악됐다.조기도입에 따른 인센티브 마지노선인 5월 말이 되자 노조 동의 없이 서둘러 성과연봉제를 확대도입한 기관은 10곳 중 7곳이 넘었다.
19일 각 공공기관 등에 따르면 성과연봉제 확대도입 대상 120곳 중 54곳(45%)은 이사회 의결만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노조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은 지난달 23일까지 63개 기관 중 12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후 확대도입을 결정한 57개 기관 중에서는 무려 42곳으로 불어났다. 73.7%에 달하는 공공기관이 노사합의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연공서열을 깨겠다는 취지로 간부급 직원에게만 적용하던 성과연봉제를 최하위 직급을 제외한 전체 직원으로 확대키로 하고 지난 1월 각 공공기관에 이를 권고했다.
애초 정부는 30개 공기업은 6월까지, 90개 준정부기관은 연말까지 성과연봉제를 확대 이행하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 권고안이 발표된 지 4개월 반만인 지난 10일 전체 120개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완료했다.
성과연봉제 확대도입 절차가 정부 목표보다 빨리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5월 말까지 도입하는 기관에만 경영평가상 인센티브와 성과급을 주겠다고 독려했기 때문이다.
실제 성과연봉제 확대 공공기관은 5월 말 들면서 부쩍 늘어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도입한 임금피크제를 경영평가에 반영해 최대 3점의 가산점을 줬다.
3점이면 경영평가상 한 등급이 올라갈 수 있는 점수다. 등급이 한 계단 오르면 임직원은 성과급을 더 받을 수 있다. 하위 등급을 받은 기관은 다음 연도 예산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만 등급이 올라가면 이를 피할 수도 있다.
성과연봉제의 경우 내년 발표될 경영평가에서 임금피크제보다 1점 더 많은 최대 4점의 가산점이 붙는다.
기재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법 적용에 대비해 노사가 어느 정도 합의를 봤던 부분”이라며 “성과연봉제는 임금피크제보다 더 중요하고 조직문화 형성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가산점을 더 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노사합의가 없더라도 성과연봉제를 이행할 수 있다고 정부가 강조한 점도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 속도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확대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과 상충하지 않는다며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도입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은 근로자에게 불이익으로 간주되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뜻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4일 2년 만에 공공기관장 워크숍을 직접 주재하며 성과연봉제 도입을 독려하기도 했다.
노사합의를 거치지 않은 공공기관들은 정부와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준정부기관의 한 관계자는 “성과연봉제를 5월까지 조기 도입하면 인센티브가 있지만 6월 이후 도입하면 큰 의미가 없다”며 “기재부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준정부기관 관계자도 “12월까지 도입해도 됐지만 다른 기관들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 없었다”며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고 해서 이사회 의결로 우선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후폭풍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에서는 노조동의 없는 성과연봉제 도입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사회나 경영진에 대한 고소·고발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일부 전문가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과연봉제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는 것이 정부 주장이지만 그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라며 “누군가의 임금을 깎아 다른 사람의 임금을 올리는 ‘제로섬’과 같은 임금구조는 대법원도 넓게 볼 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으로 보기 때문에 근로자와 사용자의 협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임금 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면서도 “노사 협상을 통하지 않은 성과연봉제 도입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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