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아파트 반사이익 볼 수도…수급 불균형 대책도 마련해야
정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서울 강남의 집값을 잡기 위해 재건축 연한을 현행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8일 “(재건축 연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밝히면서 표면화됐지만, 재건축 연한 연장은 지난해 ‘8·2대책’을 발표할 때부터 보유세 강화와 함께 다음 카드로 준비된 것이었다.정부가 재건축 연한 강화를 사실상 공식화한 것은 고강도 규제책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이 임박한 강남의 아파트들이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건축 연한을 연장하면 198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파트들이 타격을 받게 된다. 김 장관의 검토 발언만으로도 최근 가격이 크게 오른 양천구 목동과 송파구 올림픽선수기자촌 등의 매수 문의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연한 강화가 당장은 효과적이겠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먼저 지은 지 40년이 넘었거나 이미 안전진단 등을 받은 단지는 오히려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강남과 서초구, 여의도 등지의 재건축 대상 아파트 상당수가 여기에 속한다. 연한 연장이 오히려 이들 아파트 가격에 날개를 달아 주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강남에 대한 실수요가 있는 상태에서 강남 재건축을 틀어막았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풍선효과도 우려된다.
상대적으로 주거 여건 등이 열악하고, 집값 상승 정도가 덜했던 노원구 등 강북권 재건축 단지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더욱이 이들 대부분은 중·저층이어서 재건축을 할 경우 주택공급 효과가 큰 편인데, 연한 연장으로 서민주택 수급에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재건축 대책 ‘4종 세트’(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 초과이익 환수제, 연한 강화, 분양가 상한제) 가운데 조합원 지위 양도는 지난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는 이달부터 각각 시행에 들어갔다. 이들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나타내는지 지켜본 뒤 연한 강화 등 추가 대책을 내놓는 게 순서다. 집값 안정이라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한 지 불과 4년 만에 다시 환원하는 게 타당하냐’며 부동산 정책의 안정성에 대한 비판 여론도 새겨야 한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연한 연장이 집값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시행에 앞서 순기능과 역기능을 철저히 분석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연한이 40년 넘은 재건축 아파트라 할지라도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해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로 신축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없는지도 찾아봐야 한다. 재건축 연한이 연장될 경우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틀 수 있도록 보완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백약이 무효다.
2018-01-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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