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제 꿈꾸던 기자출신 정치인…보수주의 성향 강해
7일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노동당의 6년 집권을 끝내고 야당연합의 승리를 이끈 토니 애벗(55) 자유당 대표는 한때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한 기자 출신 정치인이다.그는 명목상 호주 최고 통치권자인 영국 여왕을 대리하는 호주 총독에게 승인을 받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 제28대 호주 총리로 취임하게 된다.
영국 런던에서 호주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애벗 대표는 3살 때 부모가 시드니로 돌아오면서 호주 생활을 시작했다.
시드니대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복수전공한 그는 대학 재학 시절 학생대표를 맡는 등 일찌감치 정치적 감각을 키워왔다.
학생 권투선수 출신이기도 한 그는 로즈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대 퀸스칼리지에서 정치 및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시드니 맨리 소재 세인트패트릭신학교에 들어가 한때 사제를 꿈꾸기도 했고 특이한 행동으로 ‘미친 사제’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신학공부를 중단한 애벗은 시드니대 재학시절 학보에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가톨릭위클리’에 기고하면서 글 재주를 키워 결국 호주 전국지 불러틴(Bulletin)과 디 오스트레일리안(The Australian) 기자로 활약했다.
날카로운 필력을 과시한 그는 야당이었던 자유당 대표 존 휴슨의 공보비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으며 1994년 시드니 와링가 선거구에서 보궐선거를 통해 연방의회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애벗 대표는 하원의원 시절 교육, 노사관계 업무를 주로 담당했으며 2000년 존 하워드 자유당 정부 시절 내각에 합류했다.
하워드 전 총리는 그를 “열심히 노력하며 능률적인 인물”로 칭찬한 반면 야당이었던 노동당은 당시 그를 “폭탄 투척범”이라고 혹평했다.
노동당 공격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인 그는 낙태, 배아줄기세포 연구, 동성 결혼 등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줄리아 길라드 전 총리는 애벗 대표를 가리켜 “여성혐오주의자”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하워드 전 총리는 2003년 그에게 보건부 장관직을 맡겨 의료개혁을 담당하도록 했다.
2007년 11월 자유당이 재집권에 실패하면서 야당 중진으로 물러났던 그는 2009년 말 당 대표 경선에서 말콤 턴불을 물리치고 자유당 대표로 선출된 뒤 줄곧 야당연합을 이끌었다.
케빈 러드 전 총리가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뒤 베이징(北京)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고 중국인 사위를 맞아들이는 등 아시아권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시아와의 특별한 인연은 없는 편이다.
부인 마거릿 여사와 사이에 장성한 세 자매가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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