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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다시 도는 턴테이블… 아날로그 감성 ‘심쿵’

[포토 다큐] 다시 도는 턴테이블… 아날로그 감성 ‘심쿵’

박윤슬 기자
입력 2019-10-17 18:04
업데이트 2019-10-18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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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서울 성동구 LP공장·마장스튜디오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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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성 마장뮤직 이사가 마장스튜디오에서 50년 가까이 된 래커머신으로 LP 생산에 사용될 원판을 만들고 있다. 공디스크에 제작할 음반의 음원 소리골을 새기는 작업으로 LP 제작의 핵심 기술이다.
백희성 마장뮤직 이사가 마장스튜디오에서 50년 가까이 된 래커머신으로 LP 생산에 사용될 원판을 만들고 있다. 공디스크에 제작할 음반의 음원 소리골을 새기는 작업으로 LP 제작의 핵심 기술이다.
LP(LP·Long-Playing Record) 음악을 듣는 일련의 과정들은 꽤나 번거롭고 불편하다. 턴테이블에 조심히 LP판을 얹고, 톤암을 움직여 바늘을 살며시 내려놓아야 한다. 전곡을 듣기 위해선 판을 직접 뒤집어야 하는 고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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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LP판은 컬러로도 제작돼 소비자들의 수집 욕구를 더욱 자극한다.
최근 LP판은 컬러로도 제작돼 소비자들의 수집 욕구를 더욱 자극한다.
‘더 편하고 더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밀려 도태됐다고 생각한 이 LP 음악이 부활했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이하 마장뮤직)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04년 서라벌레코드가 LP 음악 사업을 접은 지 13년 만인 2017년 6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국내 유일의 LP 공장을 개장한 것이다.

1990년대 LP 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국내 LP산업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술자들도 다른 살길을 찾으면서 LP 제작 기술의 맥 또한 끊겼다. 마장뮤직의 공장 설립·기계 제작을 책임졌던 백희성 이사는 LP 제작의 핵심인 커팅 머신을 ‘유니버샬 레코딩 스튜디오’(현 마장스튜디오)에서 겨우 찾아냈다. 대표적인 1세대 엔지니어 이청씨에게 기술을 사사한 뒤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녹음, 커팅, 프레스 등 다른 분야의 기술자들도 수소문 끝에 만나 전문 제작 기술을 전수받는데만 수년이 걸렸다. 2010년 과거의 녹음 시설과 레코드 장비, 기록들까지 갖춘 스튜디오 건물까지 인수했다. 1968년 오픈한 이 스튜디오는 한국 LP 음악의 역사다. 신중현, 양희은 등 수많은 포크음악이 이곳에서 녹음됐다.

음반의 원재료인 PVC와 마스터 음반에 음을 새겨 넣는 기계인 프레싱 머신의 국산화는 눈에 띄는 성과다. 음반 녹음부터 LP 제작까지 전 과정을 국내 기술로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스튜디오에서 음원을 녹음하고 원판에 소리골을 새기는 마스터링 작업을 한 뒤 소리가 새겨진 원판을 성수동 LP 공장으로 보내 LP판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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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판의 원료인 PVC. 수입 원료나 재활용이 아닌 국내산을 사용하고 있다. 열을 가해 덩어리(햄버거) 상태로 만든다.
LP판의 원료인 PVC. 수입 원료나 재활용이 아닌 국내산을 사용하고 있다. 열을 가해 덩어리(햄버거) 상태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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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판의 소리골은 머리카락보다 얇아 작은 먼지나 흠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현미경 검수가 필수다.
LP판의 소리골은 머리카락보다 얇아 작은 먼지나 흠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현미경 검수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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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원이 프레스 과정을 마치고 막 제작된 LP판을 육안으로 검수하고 있다.
한 직원이 프레스 과정을 마치고 막 제작된 LP판을 육안으로 검수하고 있다.
공장이라고는 하지만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러나 공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끼우고 누르고 돌리고 훑고 포장하고. 모든 생산 공정에 사람의 손이 가지 않는 데가 없다. 작업 공정 하나하나를 직접 검수해야 한다. 섬세한 물질이기에 한 치의 흠도 놓칠 수 없다. 눈대중으로 대충 넘어간다 생각하면 오해다. 청음 테스트뿐만 아니라 머리카락보다 얇은 홈을 180배로 확대해 볼 수 있는 현미경 검수까지 꼼꼼하게 진행한다.

공장 사무실 벽 한 면에 자리잡은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적힌 제작 일정엔 연륜 있는 가수부터 인디밴드, 재즈, 힙합 뮤지션까지 연령대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음악들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LP를 제작하려면 독일, 영국, 일본 등 외국 공장에 주문하고 음반을 받기까지 5~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에서도 3~4주면 완제품 생산이 가능해졌다.

LP의 부활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자료에 따르면 LP 판매량은 2008년 500만장에서 2015년 3200만장으로 6배 이상 급성장했다. 국내도 과거의 향수를 찾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뉴트로 열풍과 더불어 젊은층 구매자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데이비드 색스는 저서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디지털의 차가움에 신물이 난 소비자들이 LP 음반을 찾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LP는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다. 디지털에 비해 확실히 불편하다. 그러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만질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다. 백 이사는 “불편하기에 더욱 음악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LP의 매력”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19-10-1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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