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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대] 처음으로 문 열어 주는 자/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처음으로 문 열어 주는 자/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입력 2020-12-03 20:20
업데이트 2020-12-04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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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유명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씨가 카라얀의 탄생 100주년 기념 강의에서 말했다, ‘카라얀으로 시작하고, 카라얀을 욕하다가, 다시 카라얀으로 돌아온다’고.

나도 카라얀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카라얀은 20세기의 명지휘자로 첫손 꼽히지만, 상업적이라든가 아예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늘 따라다닌 사람이다. 그의 요트나 경비행기, 외모나 권력에 대한 집착, 스물셋 나이 차이가 나는 어린 프랑스 모델과 결혼한 사실 등이 ‘진지한’ 예술가라고 보기엔 부적절해 보였다. 1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한 카라얀이지만, 엄청난 인기도 그의 가치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마치 코카콜라처럼. 지휘자 첼리비타케의 말이다.

카라얀은 클래식 음악을 알아듣기 쉽게 대중화한 공이 크다. 보통의 지휘자도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다는 뉘앙스다. 그러나 어느 이름난 학자가 학술논문을 밤새워 설명할 수는 있어도, 알아 듣기 쉽게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지휘자들이 얽히고설킨 골목 사이를 누비고 나아가는 이미지라면 카라얀은 날개를 힘껏 펼쳐 올라가 도시 경관을 한눈에 보여 주는 그림새다. 카라얀 덕분에 난해하다는 브루크너, 바그너, 쉰베르크의 매혹을 처음 맛보았다. 쉰베르크를 모차르트처럼 들리게 하고 싶다던 카라얀은, 역시 고수다.

어느 고급예술이든 처음으로 문 열어 줄 사람은 늘 필요하다. 타란티노 감독은 예술영화에선 장뤼크 고다르가 이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지휘는 음악적 디테일을 치밀하게 살려 준다. 위대한 음악의 성숙함을 보여 준다. 반면 카라얀은 완벽주의자라 불리지만 꼼꼼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정교하다. 하지만 첼리비다케에 비하면 투박할 정도다. 그러나 카라얀만의 매력이 분명 있다. 쉽게 ‘졸업’해 버릴 만한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인생에서 음악과 군대에는 딕타투어(독재)가 필요하다 했다.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모양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필사적이다. 바다를 등지고 싸우는 것 같다. 지휘봉 밑에서 그들이 만드는 무시무시한 사운드는 콘서트라기보다는 전쟁의 연장 같다. 카라얀이 1968년에 감독하고 녹화한 베토벤 9번 영상이 레니 리펜슈탈의 선전영화를 연상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거부감이 들 수 있겠다. 다른 명지휘자들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신중히 풀어나가려 한다면 카라얀은 알렉산더의 칼처럼 매듭을 내려친다. 폭력의 경이로움이다.

또한 아름다운 대목에선 카라얀보다 관능적인 사운드를 자아낼 수 있는 지휘자는 없다. 인간의 원초적인 두 기둥이 타나토스와 에로스, 즉 죽음과 욕망이라면 이것을 소리로 구현한 지휘자는 카라얀이 유일하다.

오랜 시간 카라얀에 대한 내 생각은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카라얀의 매력은 매년 바뀐다. 지금도.
2020-12-0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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