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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모도 관리자도 없는 죽음의 일터… ‘제2 김용균 비극’ 계속된다

안전모도 관리자도 없는 죽음의 일터… ‘제2 김용균 비극’ 계속된다

손지민 기자
입력 2021-05-06 18:04
업데이트 2021-05-0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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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벌려 평택항 일한 23세 이선호씨
지난달 300㎏ 컨테이너 날개 깔려 사망
원청 무리한 작업 지시 등 진상 규명 촉구
유족 측, 2주 흘러도 사과 없어 빈소 지켜
“회사, 119 신고보다 윗선 보고 먼저” 격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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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작업을 하던 스물세 살 일용직 노동자 고 이선호씨가 개방형 컨테이너 구조물에 깔려 사망했다. 사진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개방형 컨테이너로 양쪽에 세로로 서 있는 구조물이 접히면서 이씨를 덮쳤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제공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작업을 하던 스물세 살 일용직 노동자 고 이선호씨가 개방형 컨테이너 구조물에 깔려 사망했다. 사진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개방형 컨테이너로 양쪽에 세로로 서 있는 구조물이 접히면서 이씨를 덮쳤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제공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용직 하청 노동자로 일하던 스물세 살 청년이 컨테이너 구조물에 깔려 사망했다. 현장에 안전관리자는 없었고, 안전모도 지급되지 않았다. 2018년 12월 당시 스물 네살의 나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사망한 고 김용균씨 사건과 판박이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6일 원청의 무리한 작업지시 등 사건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촉구했다.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고 이선호(23)씨는 지난달 22일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FRC(Flat Rack Container)라 불리는 개방형 컨테이너에서 나무 합판 조각을 정리하다가 300㎏에 이르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 등이 배정돼야 한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는 배정돼 있지 않았고, 이씨는 안전모 조차 착용하지 않은 채 사고를 당했다. 현장 목격자는 러시아 노동자 1명뿐이었다.

기존에 이씨가 맡았던 업무는 동식물 검역이었다. FRC 작업에 투입된 것은 사망한 당일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이씨가 본래 업무와 다른 컨테이너 작업에 투입된 경위와 안전 수칙 준수 여부 및 사전 교육 여부 등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882명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간접고용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연간 산재 사고로 다친 비정규직은 38%로 정규직(21%)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이씨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지난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지만, 내년 1월부터 시행돼 이번 사건은 적용할 수 없다.

대책위는 이날 경기 평택시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전반적인 안전관리 미흡 ▲FRC 날개 불량 ▲원청의 무리한 작업 지시 등을 문제로 제기하며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씨가 사망한 지 2주가 흘렀지만 이씨의 시신은 여전히 책임자들의 사과를 기다리며 평택의 한 장례식장에 남아있다. 친구와 유족들이 보름째 빈소를 지키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씨의 아버지는 “아이가 무거운 철판에 깔려 피를 흘리며 숨이 끊어져 가는데도 회사는 119에 신고 대신 윗선에다 먼저 보고하는 데만 급급했다”며 오열했다. 이씨의 친구도 “선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촉구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2021-05-0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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