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오디세이] <7>불편함의 미학 ‘자비의 침묵’ 수도원
건축가 이일훈은 ‘불편하게, 밖에서, 작은 공간을 나누며 늘려’ 사는 철학을 담은 ‘채나눔’ 설계방법론을 건축에 녹여 냈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경기 화성 ‘자비의 침묵’ 수도원이다. 사진에서 자비의 침묵 수도원은 건물들이 적절한 거리 또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함혜리 칼럼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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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성당’은 혼자서 하늘을 보며, 별을 보며 묵상하기엔 제격이다. 넝쿨이 벽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라 세월을 실감하게 한다.
함혜리 칼럼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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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일훈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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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로 나눈 수도원의 삶
1994년 완공된 이곳에는 수련 중인 젊은 수사 18명이 공동체 생활을 한다. 신학교 2학년생인 김모세 수사에게 일과를 물어보니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아침 기도하고 미사 드리고, 낮 기도하고, 공부하고, 저녁 기도하고 저녁 미사 드리고, 밤에 다시 기도하고 침묵의 시간을 보내다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침묵의 시간에는 신학 공부를 한다. 식사 준비와 구역별 청소는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맡는다. 2인이 한방을 사용하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방을 옮긴다. 신앙의 열정을 품고 기도하고 밥 먹고 잠자고 공부하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이 수사들의 삶이다.
채나눔 설계방법론의 범용적 사용을 고민하던 건축가는 미사를 드리는 경당을 수도원 경내에서 제일 먼 곳에 배치하면 어떨까를 제안했고 수행이 삶 그 자체인 수도회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건축가는 에세이집 ‘모형 속을 걷다’(2005·솔 출판사)에 이렇게 썼다.
‘경당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불편하다. 비 오는 날은 비 맞고 눈 오는 날은 눈 맞아야 하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특히 겨울 새벽에 살을 파고드는 추위를 뚫고 가려면 귀찮은 일이다. 말하자면 대충 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점을 노렸다.’
‘작을수록 나누자’는 채나눔은 불편함을 근간으로 삼는다. 건축가는 수도원의 기능별로 단위 건물들을 나누고 땅의 높낮이와 연결하는 방식을 달리하며 다양한 동선을 만들고, 공간 구성을 통해 채나눔의 철학적 권유를 풀어놓았다. 양 수사는 “불편함 속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시시각각 풍요로운 사색거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수도원의 산책로를 따라 좁은 문을 지나면 작은 경당을 만난다.
함혜리 칼럼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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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경당은 생활관에서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돌로 만들어진 좁은 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야 도달한다. 정말 크기도 작고 소박하다. 제일 값싼 재료인 드라이비트로 외벽을 마감하고 가기둥을 세운 것 말고 장식도 없다. 내부도 거친 콘크리트를 그대로 두고 장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정 소장은 “싼 재료를 사용한 것은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건축주의 사정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고 가장 흔하게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재료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쓰는가에 따라 그 건축의 맛이 더할 수 있다는 건축가의 평소 생각이 배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소박한 경당 앞에는 마리아상과 ‘십자가의 길’ 14처 묵상 공간이 있다.
함혜리 칼럼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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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 의자는 콘크리트 거푸집에서 뜯어낸 나무로 만들었다. 좌석 옆으로 ‘ㄱ’자 모양의 가기둥을 여러 개 세워 측랑의 효과를 냈다.
십자가는 따로 없다. 왼쪽 측면에 십자가 모양의 가벽을 만들어 설치하고 벽 뒤쪽 측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이 십자가 모양을 드러나게 한다. 제대는 시멘트로 만들었다. 제대 뒤의 벽에 설치된 구리로 된 삼각뿔 모양의 청동 조각작품 같은 것은 성체, 제구 등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감실(龕室)이다. 육방체가 비스듬히 벽에 박힌 모양인데 나머지 반은 북쪽 외벽으로 돌출돼 있다. 북측 외벽의 튀어나온 감실에는 뱀 문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구리 뱀은 모세의 지팡이를 상징하며 두려움 없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 실천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당에 들어가면 십자가 모양의 가벽이 있다.벽 뒤쪽 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이 십자가 모양을 드러나게 한다.
함혜리 칼럼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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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규칙적인 수도원의 삶 속에서 다채로운 자연의 변화를 느끼도록 했다. 윤안드레아 수사는 “동지 즈음에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면 십자가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맞는다”면서 “계절마다 경당과 주변의 자연이 주는 감동이 더욱 경이롭다”고 말했다. 안에서 편하게 생활하면 알 수 없는 자연의 조화다.
불편함의 미학을 들여놓은 ‘자비의 침묵’ 수도원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겸손의 복도’다. 생활관은 길게 가로로 배치한 2층 건물이다. 방을 여러 개 만들면 자연스럽게 복도가 생긴다. 건축가는 단순한 연결 통로가 아닌 의미와 효용을 지니는 복도를 만들 궁리를 했다. 경당을 일부러 멀리 두었듯 복도를 일부러 좁게 만들었다. 생활관의 복도는 폭이 75㎝로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운 넓이다. 비켜서야 지날 수 있으니 저절로 예의와 공경이 묻어나고 겸손을 배운다.
누군가 비켜서야만 지나갈 수 있는 ‘겸손의 복도’.
함혜리 칼럼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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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는 그릇
건축가는 수사들이 자연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함으로써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반응하고 사색하는 삶을 유도했다. 채로 나눈 건물 사이사이에 휴식할 수 있는 녹지 공간을 만들었고 독서실 아래 필로티에는 테이블을 놓았다. 작은 경당 앞에는 길쭉한 판벽으로 기도공간 14처를 만들어 사색의 마당을 꾸몄다. 옥상 공간은 입구만 빼고 사방의 벽을 키보다 높게 쌓아 오로지 하늘만 보이도록 했다. 하늘을 보며, 별을 보며 묵상하기엔 여전히 제격이다. 혼자 기도하고 싶을 때를 위해 건물 외부에 1인 기도실도 만들었다. 2007년 증축할 때 지어진 도서관 건물도 책을 보다가 밖으로 나가 자연을 마주할 수 있도록 테라스를 두었다.
수도원의 작은 건물들은 적절한 거리 또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수사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려면 무조건 밖으로 나와서 가야 한다. 이른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기도하러 가는 동안 마음이 정화되고 생각이 가다듬어져 겸손한 마음으로 경당에 들어가게 된다. 양 수사는 “선생은 건축은 겸손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건축이지만 마치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건축가 이일훈은 가고 없으나 건축은 이렇게 남았다. 마음이 담기고 삶과 맞닿아 있는 건축, 그가 추구하던 인문학적 건축은 이런 것이리라.
함혜리 칼럼니스트
2021-07-26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