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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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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09-03 02:02 포토 다큐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포토다큐] 60년 역사 품고 사라지는 그곳, 종로4가 예지동 시계골목

박종현씨가 기스미(시계 수리용 렌즈)를 끼고 핀셋으로 작은 시계 부품을 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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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현씨가 기스미(시계 수리용 렌즈)를 끼고 핀셋으로 작은 시계 부품을 꺼내고 있다.

12시 17분.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시계골목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사람들의 눈길을 맨 먼저 잡아끄는 것은 멈춰진 시계다.
골목 입구와 시계. 시계는 언제나 12시 17분이다.

▲ 골목 입구와 시계. 시계는 언제나 12시 17분이다.

서울 종로4가 광장시장 맞은편. 지하철 을지로4가역에서 배오개다리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이곳의 다른 이름은 ‘예지 금은보석시계 도매상가’. 시계골목은 1960년대 청계천 복개로 인근 시계 상인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이후 귀금속과 카메라 상점 등도 모여들어 국내 최대의 예물 상가이자 시계 명장들의 사관학교로 전성기를 보냈으나 휴대전화의 보급과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재개발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상점이 셔터를 내렸지만 시계 골목답게 다양한 시계들이 여전히 자리에 남아 고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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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개발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상점이 셔터를 내렸지만 시계 골목답게 다양한 시계들이 여전히 자리에 남아 고객을 맞이한다.

결정적으로 2006년 ‘세운4구역’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된 이후 하나둘 오래된 터전을 떠났다. 한때 1400여개 점포가 밀집했던 곳이지만, 이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소수의 상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상점 주인이 유리 진열장에서 시계를 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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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상점 주인이 유리 진열장에서 시계를 꺼내고 있다.

골목의 역사만큼이나 이곳 기술자들의 경력도 만만찮다. 40년은 기본이고 50년이 훌쩍 넘는 사람들도 많다. ‘장인’이라는 칭호가 자연스레 입에 붙는다. 시계촌이 아니라 장인촌이라 불려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기자라고 소개하니 대뜸 “어차피 사라질 거 찍어 가서 뭐해?”라고 묻는다. 체념과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대꾸였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종종 찾아오던 외국인 관광객마저 뚝 끊겼다. 유튜브를 보고 찾아왔다는 김봉재(29)씨는 “반세기 넘는 역사 동안 시계 장인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이곳은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시계 성지나 다름없다”며 “너무 늦게 알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과거의 단골집을 찾아 한참을 헤매던 90대 노신사는 단골집이 골목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자리를 옮긴다.
시계 골목에 터를 잡은 지 36년째인 시계 장인 박종현(76·영신사)씨가 밝은 표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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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 골목에 터를 잡은 지 36년째인 시계 장인 박종현(76·영신사)씨가 밝은 표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16세 때부터 무보수로 기술을 배웠다는 영신사의 박종현(76) 장인은 이 골목 안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술자다. “시계는 특별하다. 결혼 예물, 군 입대, 시험 등 큰 행사에 함께한다. 유품으로 간직한 사람도 많다”며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시계도 사라지지 않을 테니 이런 골목 하나 쯤 남아 있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직하게 가는 시계처럼 그저 정직하게 이 자리에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시계를 만지고 싶어.” 손때 가득한 작업실의 부품들을 ‘새끼’라고 부르는 그에게서 천직을 향한 자부심과 애정이 엿보였다.
오후 5시가 다가오면 골목의 상인들은 하나 둘 시계를 정리하고 퇴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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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5시가 다가오면 골목의 상인들은 하나 둘 시계를 정리하고 퇴근을 준비한다.

다시, 12시 17분.

모름지기 흐르는 시간은 멈출 수 없고 시계는 움직여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가끔은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세상의 시선에서 비켜나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마저 새 건물들에 밀려나 흔적만 남게 되는 날이 오겠지. 골목 입구의 멈춰진 시계처럼 이곳도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다. 이대로 사라져 버리지 않고 역사 속에서 그 가치가 시간의 더께 아래서 조용히 더 빛나기를…. 가만히 마음의 시계를 멈춰 본다.

글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021-09-0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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