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품격’ 이 손 안에 있소이다
의전은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다는 얘기다. ‘의전의 꽃’인 대통령 의전을 중심으로 의전의 주요 내용을 질의응답(Q&A) 형태로 살펴봤다.2006년 3월 31일 노무현(①)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3부 요인과 헌법기관장을 초청해 만찬을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쪽 방향으로 당시 김원기(②) 국회의장, 윤영철(③) 헌법재판소장, 한덕수(④) 총리직무대행 등의 순이다. 윤 전 헌재소장이 한 전 총리보다 대통령과 가까운 자리에 앉은 것은 의전 서열이 앞선다는 의미다. 이날 만찬 이전에는 총리가 헌재소장보다 의전 서열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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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고 김대중(①) 전 대통령이 독일 정부가 수여하는 독일 일등대십자훈장을 받은 뒤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행사장에서 의전 대상자의 배우자(②)는 대상자의 왼쪽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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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이란 무엇인가.
-국가 간 외교 행사나 정부 기관의 공식 행사에서 지켜야 할 의식이다. 광의로는 사회 구성원들이 따라야 하는 예의 범절까지도 포함된다.
→의전은 언제부터 명문화됐나.
-유럽 국가들이 나폴레옹 전쟁 이후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1815년에 개최한 ‘빈 회의’에서 국가 간 의전에 대한 원칙이 처음으로 정해졌다. 의전에 대한 원칙이 확립되지 않았던 1768년 영국 버킹엄궁에서 열린 무도회에서는 러시아 대사와 프랑스 대사가 자리를 놓고 격투를 벌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성종 때 편찬된 국조오례의에 의전 절차 등이 규정돼 있다.
→의전 서열은 누가 정하나.
-국가 주요 인사들의 서열이 명문화된 단일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서열을 정할 때 헌법이나 관련 법령을 참고한다. 관행이나 선례 등을 따져보기도 한다.
박근혜(①)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②)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초청을 받은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의 오른쪽에 앉았는데 이는 상석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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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0일 제주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당시 경제인 초청 간담회에서 3개국 정상이 나란히 앉아 있다. 행사 주최국 정상인 이명박(①) 전 대통령이 상석인 가운데 자리에 앉고, 그다음 상석인 이 전 대통령 오른쪽에는 차기 행사 개최국 정상인 하토야마 유키오(②) 전 일본 총리가 자리했다. 왼쪽은 원자바오(③) 전 중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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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봤다고 지인에게 자랑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 들 필요는 없다. 전화 통화가 안 되기 때문이다. 경호 등을 이유로 방해전파를 쏴 대통령 주변 전파를 모두 차단한다. 대신 사진 촬영 기능을 활용하는 것은 괜찮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의 시나리오는 사전에 외부로 누설할 수 없으며 2급 비밀문서에 해당한다.
→대통령은 홀수를 좋아하나.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의 좌석 배치는 주로 짝수보다는 홀수로 이뤄진다. 이는 대통령의 뜻이라기보다는 행사를 준비하는 실무진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상석을 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때 상석은 누가 차지하나.
-손님이 누구인지에 달렸다. 정상회담 주최국 정상이 방문국 정상에게 상석인 오른쪽을 양보한다. 지난 5월과 6월 한·미, 한·중 정상회담 때 방문국 정상인 박근혜 대통령이 오른쪽에 앉은 것도 이러한 원칙을 따른 것이다. 대통령의 배우자는 대통령 왼쪽에 자리하는 게 관례다.
→제임스 본드의 코드명은 ‘007’이다. 대통령 해외 순방에도 이러한 코드명이 따로 있나.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별도의 명칭인 코드명이 붙는다. 사전 협의 과정에서 정보가 새 나가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주로 부르기 쉽고 순방 의미를 담을 수 있는 3~4음절의 단어가 활용된다. 박 대통령의 지난 5월 미국 방문 당시 코드명은 ‘새시대’였고, 지난 6월 중국 방문 때는 코드명(서해안)이 사전에 공개되자 이를 바꿨다.
→대통령 전용기는 빠른가.
-대통령은 다양한 전용 교통편이 있다. 이 중 대통령 전용기의 공식 명칭은 ‘대한민국 공군 1호기’이며 대통령이 탑승했을 때는 ‘코드 원’(CODE-1)으로 불린다. 보잉747 기종을 개조한 것으로,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대한항공으로부터 5년 동안 빌린 것이다. 대통령 전용기는 일반 항공기보다 속도를 높여 비행한다. 연비보다는 안전과 신속성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대통령 전용차가 지나갈 때도 교통 통제를 하기 때문에 길이 막히는 경우는 없다. 방탄 성능을 갖춘 전용차는 현대차와 벤츠, BMW, 캐딜락 등 4종이 있으며 같은 차종을 여러 대 보유하고 있다. 대통령이 어느 차량에 탔는지 알 수 없도록 동시에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전용 헬기는 미국 시콜스키사가 개발한 S92 기종으로, 대통령이 탑승하면 똑같은 헬기가 한 대 더 뜬다. 전용 KTX의 외관은 한국형 고속철인 ‘KTX산천’과 같고 평소 전용칸을 제외하곤 일반 승객이 이용한다.
→대통령 해외 순방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해외 순방의 격에 따라 다르다. 외국 정상의 공식 초청을 받아 국빈 방문할 경우 공식 수행원의 체재비를 초청국에서 지원하고 공항 환영식과 정상회담 등이 필수 일정에 포함된다. 반면 실무 방문의 경우 체재비 지원이 없고 환영식 등도 생략된다. 의전을 정하는 기준은 상호주의다. 받은 만큼 주는 ‘기브 앤드 테이크’ 방식이라는 얘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한·미 정상회담 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서 선물로 받은 가죽 점퍼를 입고 다닐까.
-정상회담이 열리면 정상 간에는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게 관례다. 그러나 받은 선물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선물은 받은 즉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돼 보관, 전시된다. 예외는 없다.
→국제 행사에서 국가 간 의전 서열은 어떻게 정하나.
-유엔 총회의 경우 매년 추첨을 통해 특정 국가를 선정한 뒤 그 나라를 시작으로 알파벳순으로 좌석을 배정한다. 국제 행사 참석자들의 서열을 모두 매길 수는 없다. 이때 동원되는 게 구역별 지정색이다. 레드존(정상)과 블루존(공식 수행원), 옐로존(기자), 화이트존(일반 수행원) 등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묵시적 약속이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2013-09-0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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