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의심 명단 6만명 공개…성매수 처벌 가능할까

성매매 의심 명단 6만명 공개…성매수 처벌 가능할까

입력 2016-01-20 15:18
수정 2016-01-2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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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 공개에 “혹시 내 번호가?”…유포자 처벌 가능성

경찰이 ‘강남 성매수자 의심 명단’으로 불리는 엑셀 파일을 입수해 분석에 착수함에 따라 명단의 진위와 함께 성매수 의심자들의 처벌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이 명단에는 이름은 없지만 휴대전화 번호와 차량 번호, 외모 특징, 성적 취향과 액수, 여성의 이름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 실제로 성매매 조직이 관리한 명단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이 명단에 올랐다고 해도 실제 성매수를 했다고 입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여서 실제 사법처리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이 명단을 유포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커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조건만남 접촉하고서 ‘구글링’으로 보완 가능성

여론기획 전문회사를 표방하는 ‘라이언 앤 폭스’사가 “성매매 조직이 작성한 고객 명단”이라며 6만6천300여건의 전화번호와 차량 등 특징점 등이 정리된 엑셀 파일을 공개했고,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이 파일을 넘겨받아 수사에 들어갔다.

이 명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상자들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성매매 상대를 찾는 이른바 ‘조건 만남’을 했거나 시도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명단에는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성매매를 중개한 이들이 성매수자와 나눈 대화에서 획득한 정보로 보이는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다.

이러한 정보는 크게 실제로 성매수를 한 것으로 보이는 정보와 대화를 하다 그만둔 정보 등 두 종류로 나뉜다.

차종, 차량번호나 ‘훈남’·‘매너 좋음’·‘진상’ 등 외양이나 태도 묘사 등은 실제로 만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이기에 해당자가 실제로 성매매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2번 캔슬’·‘약속 펑크’ 등의 내용은 성매매를 약속했으나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정보로 보인다.

작성자가 채팅에서 파악한 정보뿐 아니라 이를 토대로 한 구글링(구글을 이용한 정보 검색)으로 획득한 정보를 보강해 명단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명단에는 ‘구글’이라는 단어가 2천100여개가 검색된다. 구체적으로는 ‘구글 XX사(회사 이름)’·‘구글 XXX(커뮤니티 이름) 청바지 판매’·‘구글 검색 안 됨’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성매수자는 처벌에 대한 우려로 자신의 정보를 웬만하면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의사, 대학교수, 경찰 등 직업 정보는 명단 작성자가 구글링을 통해 확보했을 수도 있지만 아예 허위 정보일 개연성도 있다.

실제로 연합뉴스가 명단에 있는 휴대전화 번호를 무작위로 선택해 구글링한 결과 직업 정보 등이 명단과 일치했다. 일부는 이름까지 노출돼 있었다.

◇ 직접 증거 능력 떨어져…명단만으로는 사법처리 힘들 듯

이렇게 명단에 담긴 대상자가 실제로 존재하고, 최소한 성매수를 시도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매매 적발을 담당하는 일선 경찰관은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해당 명단은 이를 발표한 라이언 앤 폭스가 직접 작성한 명단이 아니라 다른 이로부터 건네받은 ‘2차 자료’라 증거 능력이 떨어지고 현장을 덮쳐야 겨우 입증되는 성매매 사건의 특수성 때문이다.

서울의 한 경찰관은 “명단은 여러 단계를 거쳐온 자료이기에 그 자체로 증거가 되기가 어렵다”며 “성매수를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 해당자가 성매수를 했다고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은은 “성매수자를 처벌하려면 현장을 적발하거나 성매매 여성의 증언이 필요하다”며 “아니면 최소한 성매매 업소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내역 같은 정황 증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명단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성매수 처벌에 관한 사례를 보면 이번 의혹 대상자가 실제 사법처리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11년 발생한 ‘국회 앞 안마방 전표 사건’은 성매수 남성을 대거 처벌한 사례로 기록됐다.

당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성매매가 벌어진 국회 앞 안마방에서 결제된 신용카드 매출전표 3천600여장을 압수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17만∼18만원 이상을 결제해 성매매했을 개연성이 큰 명의자를 대거 소환해 조사를 벌여 300여명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처벌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성매수자들이 결제한 전표와 성매매 여성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2009년 연예계와 재계 인사들이 성 상납과 술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자연 리스트’의 당사자들은 처벌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피해자가 사망하고 문건의 문구가 추상적으로 작성됐다”며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 “혹시 내이름도? 숨어서 떠는 남성들”…명단 유포자 처벌 가능성 커

6만명 이상의 강남 성매매 조직 고객 명단이 떠돈다는 소식에 과거 조건만남 채팅을 해본 남성들은 좌불안석일 수 있다. 여기에 경찰관도 수십명 포함돼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강남 지역을 담당한 경찰관들은 내심 불쾌한 기색이다.

서울 강남 지역 한 경장은 “난 리스트에 없지만 다른 경찰관이 명단에 있다고 하더라도 단속을 위해 전화를 했던 것에 불과할 것”이라며 “실제로 (성매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도 안 되는데 무차별적으로 전화번호가 배포되는 것이 불쾌하다‘고 말했다.

명단에 전화번호가 포함된 한 남성은 연합뉴스에 전화를 걸어와 ”2년 전부터 다짜고짜 욕설을 하거나 ’저번에 만난 사람인데 기억하느냐'라고 하는 등 이상한 전화가 걸려와 시달리고 있다“며 ”조건만남을 하지 않았는데 이 명단이 널리 공개되면 부적절한 일을 한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번 명단을 유포하는 행위는 처벌 가능성이 커 주의가 요구된다.

이름이 없더라도 명단에 있는 휴대전화번호 자체가 개인 식별이 가능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매매와는 관련이 없는 무고한 이들이 명단에 올랐을 수도 있기에 추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다.

한 경찰서 사이버 수사 담당자는 ”이름이 없다고 하더라도 전화번호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기에 개인정보 침해에 해당한다“며 ”단순 흥미로 명단을 유포하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명단에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리돼 있는데 이는 통신 비밀 침해이자 사생활 비밀 침해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이라며 ”성매매 자체가 위법이긴 하지만 공인이 아니면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에 해당하기에 명예훼손 위법성 조각 사유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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