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한 도둑 때려 사망’ 항소심도 집주인에 ‘유죄’

‘침입한 도둑 때려 사망’ 항소심도 집주인에 ‘유죄’

입력 2016-01-30 10:18
수정 2016-01-3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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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과 사망의 인과관계 인정…“정당방위에 해당 안 돼”

집에 침입한 50대 도둑을 때려 뇌사 상태에 빠뜨렸다가 치료 중 사망한 사건의 피고인인 집주인에게 항소심 법원이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춘천 제1형사부(심준보 부장판사)는 29일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집주인 최모(22)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 2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이날 항소심 선고공판은 2014년 8월 1심 선고 이후 18개월 만에 이뤄졌다.

◇ 뇌사도둑 사건의 재구성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 논란을 일으킨 이 사건은 2014년 3월 8일 오전 3시 15분께 원주시 남원로의 한 주택에서 발생했다.

당시 입대 신체검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새벽에 귀가한 최씨는 2층 현관문을 열었다.

이때 훔칠 물건을 찾다가 방에서 거실로 나오는 도둑 김모(당시 55)씨와 3m 거리를 두고 마주했다.

그 순간 최씨가 “누구냐?”라고 물었으나 도둑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도망가려 했다.

집주인 최씨는 달려가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때려 넘어뜨렸다.

이후 최씨는 넘어진 상태에서 달아나려는 김씨를 운동화 발로 밟거나 걷어차고, 알루미늄 빨래 건조대로 수차례 내리쳤다.

자신의 가죽 허리띠도 풀어 쇠 부분을 잡고 띠 부분으로 때리기도 했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는 이미 도둑 김씨의 얼굴과 옷, 거실바닥은 피가 흥건했고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집주인 최씨의 폭행으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도둑 김씨는 뇌사 상태에 빠져 원주의 한 요양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다.

검찰은 위험한 물건인 빨래 건조대 등으로 상해를 입힌 점을 들어 집주인 최씨를 ‘집단·흉기 등 상해’ 혐의로 기소했다.

반면 최씨와 변호인은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정당방위’ 내지 ‘과잉방위’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1심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받아들여 최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집주인 최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과정에서 얘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요양병원에서 치료 중이던 도둑 김씨가 그해 12월 숨진 것이다.

검찰은 최씨에 대한 공소장을 상해 치사 혐의로 변경했고, 항소심 재판부도 법원조직법에 따라 춘천지법에서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로 담당이 변경됐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집주인 최씨는 재판이 장기화하자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지난해 3월 보석 석방됐다. 이후 집주인 최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 “1차 폭행으로 완전히 제압했는데도 추가 폭행”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집주인 최씨의 행위가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에 해당하느냐와 도둑 김씨가 뇌사 상태에서 치료 중 사망한 원인이 집주인의 폭행과 인과관계가 있느냐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가 도둑을 제압해 넘어뜨린 1차 폭행과 그 이후 빨래건조대와 허리띠 등으로 재차 이뤄진 추가 폭행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완전히 제압한 1차 폭행에 이어 추가 폭행한 피고인의 행위는 방어 의사를 초월해 공격 의사가 압도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갖췄다고 볼 수도 없는 만큼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 소견상 피해자가 의식불명의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가장 유력하고 거의 유일한 원인은 피고인의 폭행에 따른 두부 외상성 경막하 출혈”이라며 “이는 적어도 다른 간접 원인과 결합해 피해자를 사망하게 한 원인으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1심 재판에서 논란이 됐던 알루미늄 빨래건조대가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느냐에 대한 것은 ‘상해 치사’로 공소장이 변경되면서 구성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양형에 대해 “피고인만 항소한 것으로 ‘불이익변경의 원칙’을 적용,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라며 “이 사건의 발단은 피해자가 최씨의 집에 무단침입해 물건을 훔치려 하면서 빚어진 점, 유족에게 500만원 공탁한 점, 초범인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선고공판 직후 법정을 나선 최씨는 “돌아가신 피해자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최씨의 변호인은 “자신의 집에 침입해 물건을 훔치려 한 도둑을 제압한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방위가 아닌 단순 범죄로 판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즉시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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