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투신이 앗아간 ‘소금꽃’ 공무원의 안타까운 삶

공시생 투신이 앗아간 ‘소금꽃’ 공무원의 안타까운 삶

입력 2016-06-01 16:39
수정 2016-06-0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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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 아내, 아들 앞에서 40대 공무원, 투신 공시생에 부딪혀 사망

‘서글 서글 웃는 모습에서 성실함이 묻어나오는 공무원, 누구에게든 고개 숙여 친절을 베푸는 사람’

전남 곡성군의 한 홍보담당 공무원은 최근 영화 ‘곡성’ 개봉으로 곡성군이 전국의 이슈가 되자 “곡성군을 제대로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며 폭염이 내리쬐는 축제장을 진땀을 흘리며 뛰어다녔다.

10일 동안 이어진 축제를 치르며 매일 밤늦은 퇴근길에 오른 그의 등 위에는 ‘소금꽃’이 하얗게 피었다.

그런 공무원 가장의 생명을 공무원시험 준비생의 안타까운 선택이 송두리째 앗아갔다.

지난달 31일 오후 9시 48분께 광주 북구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대학생 A(25) 씨가 건물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같은 시각 이 아파트 입구에는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전남 곡성군청 홍보담당 양모(38) 주무관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버스정류장까지 마중 나온 만삭의 아내, 5살 아들은 가장 B 씨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출산 두 달여 앞둔 아내의 눈앞에서 20층에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친 A씨가 남편을 덮쳤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두 사람은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뒀다.

비극이 일어난 아파트 20층 복도에는 A4 2장 분량의 쪽지와 술이 절반가량 담긴 양주병이 남아 있었다.

A 씨가 손으로 써내려간 쪽지에는 ‘태어나서 무언가를 쉽게 성취한 적이 없는데 왜 남들은 쉽게 행복할까’, ‘본심 아닌 주위 시선에 신경 쓰여서 보는 공무원시험 외롭다’ 등 처지를 비관하는 글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A 씨는 유서로 전한 마지막 이야기에 평온한 일상을 향한 염원을 드러냈지만, 그의 잘못된 선택은 한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고 말았다.

‘차분하고 논리적이고 성실한 사람, 아까운 인재, 광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면서도 지각 한 번 없던 사람’

전날까지도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던 양 주무관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직장 동료들이 전한 기억이다.

2008년 공직에 입문한 양씨는 2014년 7월부터 홍보업무를 담당했다.

매일 아침 언론보도 수집과 분석을 위해 오전 8시 전에 출근했고, 보도자료 작성 및 소식지 발간 작업으로 광주행 막차시간에 맞춰 퇴근하기 일쑤였다.

최근 곡성에서 열리는 장미축제가 영화 ‘곡성(哭聲)’의 영향으로 새삼 주목받으면서 그는 더욱 헌신적으로 일했다.

다른 동료공무원보다 일찍 출근해 아침 신문을 차곡차곡 오려 정리했고, 밤늦게까지 축제 관련 아이템을 발굴하거나 아름다운 곡성 사진을 추려 기자들에게 보냈다.

거의 매일같이 곡성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방문한 기자들을 안내하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 양 씨의 페이스북에는 곡성에 대한 기사가 빼곡히 올려져 있어 그의 곡성에 대한 사랑을 느끼기 충분했다.

양 씨는 건실한 가장이기도 했다.

만삭의 아내와 아들을 집에 두고 외벌이에 나선 그는 고된 업무에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사망 당일에도 오후 8시 46분까지 일한 양 씨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광주행 막차에 올랐다.

한 동료는 “고인은 성실한 공무원이자 자상한 가장이었다”며 “최근 업무가 많아 이날도 늦게 퇴근했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양 씨는 공직에 몸담은 지 8년여밖에 안 돼 불의의 사고로 숨지고도 연금 수급 대상자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곡성군은 이를 고려해 양 씨의 순직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A 씨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사건은 검찰에 송치되더라도 당사자가 숨져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지만, 보험이나 보상 처리 과정에서 도움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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