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직엔 안전모와 안전화 안줘요…나오지말라 할까봐 참아요”

“일용직엔 안전모와 안전화 안줘요…나오지말라 할까봐 참아요”

입력 2016-06-02 16:30
수정 2016-06-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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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수주 공사 현장엔 일용직만…안전사고에 노출“저가낙찰·다단계 구조적 문제점 개선해야”

“일용직에게는 안전모와 안전화도 주지 않고 스스로 준비하게 하는 공사현장이 아직도 수두룩합니다. 근무 경험이 거의 없거나 현장에 처음 투입된 일용직들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곳에 있는지도 모르다가 변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올해로 28년째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이모(51)씨는 서울, 경기 등 수도권 곳곳의 토목·건축현장 상당수가 여전히 ‘위험투성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제도가 개선되면서 외형상으론 조금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청업체들은 비용을 최대한 아끼려고 원청업체나 관계기관이 압박하지 않으면 공사비에 포함된 안전관리비를 쓰지 않으려 든다”고 말했다.

그는 “덤프트럭에 실린 자재를 내리는 덤핑작업 중에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엉터리 신호수를 눈속임용으로 세워 둔 현장이 부지기수”라고 꼬집었다.

지난 4월에는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지붕 교체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근로자가 지붕 판이 무너지면서 떨어져 숨진 사고와 관련, 근로자에게 안전모를 지급하지 않은 건설업체 대표와 하청업체 대표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15년간 건설 플랜트 현장에서 배관설치 작업을 해온 정모(49)씨는 “일하다 보면 바쁘고 시간이 없어 안전수칙을 안 지킬 때도 있다”면서 “근로자 스스로도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에 사는 10년차 일용직 근로자 김모(43)씨는 “국내 건설현장의 특성상 정규직을 쓸 수 없고 비정규직 일용직 근로자나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다”면서 “현장에서 폭발 등 안전사고 위험이 느껴져도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감히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현재 최저가 낙찰제로 진행되는 건설공사는 시간과 비용을 아껴야 이윤을 뽑을 수 있는 구조여서 사고 위험과 이윤 추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셈”이라며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바꾸고 최저가 낙찰이 아닌 적정 공사비 제도로 바꿔여 한다”고 주장했다.

1일 경기도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14명은 모두 일용직 근로자였다.

이들은 모두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의 하청업체인 매일ENC에 정식 채용된 것이 아닌, 각자 일용직 개념으로 계약관계를 맺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수사 결과 이들은 매일ENC와 올해 4∼5월에 계약을 맺었고 하루 임금은 16만∼18만원에서 4대보험을 제하고 일당을 받기로 돼 있었다.

국내 대형 건설사 임원 출신 인사는 “토목공사는 대부분 공정을 장비들이 하는 탓에 현장 인력을 80%가량은 고정인원이 아닌 필요할 때마다 부르는 일용직”이라며 “토목공사는 현장이 산재돼 있고 일용직 비율이 높아 안전교육이나 관리가 더 부실한 편”이라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서는 최저가 낙찰제와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동현 건설노조 충남지부장은 “건설현장 쪽의 알선 구조가 대부분 직접 고용이 아닌 물량으로 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서 ”하청업체도 인력을 항시 보유한 것이 아니라 재하도급 계약을 주고 공사를 맡기는 구조여서 고강도의 장시간 노동이 아니고서는 최저가 낙찰제에 따른 공사 금액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교육시간이 2시간으로 정해져 있지만 실제로는 공사 물량을 시간 내에 마치려면 이를 지키기 어렵다“면서 ”직접고용이 아닌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고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근로자들의 안전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건설협회 인천광역시회 정근영 사무처장은 ”공사현장의 안전에 관련된 규정과 제도는 이미 완비돼 있다“면서 ”문제는 이를 지키지 않는 업체와 감독을 소홀히 하는 관계기관에 있다“고 지적했다.

정 사무처장은 ”지하철공사의 경우 최저가 낙찰로 경쟁하다 보니 애초부터 이윤이 안 남는 구조여서 하청업체들이 안전에 관련된 관리자 배치, 교육, 시설 구비 등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가 나도 원청업체의 책임을 묻는 것이 제한적인데 이를 보완하도록 책임 조사와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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