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저리네요”…3년만에 돌아온 아들의 용돈 5만원·학생증

“가슴이 저리네요”…3년만에 돌아온 아들의 용돈 5만원·학생증

입력 2017-04-24 10:13
수정 2017-04-2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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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서 쓰라고 준건데”…지갑·가방·일회용 안경렌즈도 그대로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3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저리고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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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103일만에 돌아온 세월호 희생자 학생증.카드
1천103일만에 돌아온 세월호 희생자 학생증.카드 1천103일 만에 가족 품에 돌아온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백승현 군의 학생증.카드
가족 제공=연합뉴스
세월호 침몰과 함께 주인을 잃고 깊은 바닷속을 헤매던 안산 단원고 2학년 8반 고 백승현 군의 여행용 가방과 지갑, 학생증, 용돈 5만원 등이 1천103일 만에 엄마 품으로 돌아왔다.

백 군의 어머니 임현실(51) 씨가 24일 연합뉴스에 제공한 백군의 유류품 사진에는 ‘백승현’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학생증과 여행 떠날 때 용돈으로 준 5만원, 1회용 안경렌즈, 지갑, 여행용 가방 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학여행 간다고 들떠 여행가기 전 새로 사서 가져간 티셔츠 2장과 신발도 돌아왔다고 어머니 임씨는 전했다.

임씨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엊그제(21일) 연락이 와 토요일(22일)에 목포에 가서 승현이의 캐리어와 지갑 등을 찾아왔다”며 “유류품 보관소 안에 들어가니 약품 처리 후 교복, 세면도구, 양말, 속옷 등을 따로 분류해놓고 건조 중인 것을 일일이 찾아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3년 전 아이가 올라왔을 때 못찾은 아이가 27∼28명인가 해서 늦게 올라와 애가 탔는데, 3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저리고 똑같네요”라고 울먹였다.

그는 “나일론이 섞인 혼방소재로 된 교복, 넥타이는 색만 바랬지 구멍 하나 없이 온전했는데 면 소재 옷은 다 삭았고, 캐리어 천 손잡이는 너덜너덜했다”고 돌아온 옷가지와 가방 상태를 전했다.

또 “아이가 20개들이 1회용 렌즈를 가져갔는데 2개 쓰고 18개가 그대로 들어있더라”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 푼도 쓰지 않고 물에 젖어 돌아온 용돈은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승현이 어머니는 “어휴 속상하죠. 수학여행 가서 쓰라고 준 건데…”라고 한숨과 탄식을 내뱉었다.

“(참사)초창기 포렌식으로 복원한 세월호 내부 화면을 보면 (2014년 4월)16일 승현이가 아침에 밥맛이 없었는지 친구랑 사발면을 먹고 있더라구요. 수학 여행가기 전 용돈으로 현금 5만원을 주고 은행(계좌)에 따로 더 넣어줬는데, 맛있는 거라도 사 먹지…”

이번에 돌아온 유류품은 제 자리인 승현이 방에 가져다 놓기로 했다.

승현이 어머니는 “배에서 꺼내고 나서 약품 처리한 거라 냄새가 심해 열흘 이상 물에 담가놔야 한다고 해 욕조에 담가놨어요. 하루에 한 번씩물을 갈아주며 냄새를 빼고 있다”고 했다.

승현이 방은 수학여행 갔을 때 그대로다.

그는 “장례 치르고 나서도 승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밤 10시 조금 넘으면 방에 불을 켜 놔요. 제가 어디를 가도 잠은 안 자고 와요. 애 혼자 놓고 가는 거 싫어서”라며 가슴에 묻은 아들을 그리워했다.

백군의 캐리어와 지갑이 1천103일만에 엄마 품으로 돌아온 사실은 세월호 자원봉사자 임영호씨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방과 지갑, 용돈 등을 찍은 사진 다섯 장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임씨는 “승현이가 수학여행을 떠난 지 1103일 만에 여행용 캐리어와 지갑이 세월호에서 돌아왔다”며 “입고간 교복과 옷가지들 그리고 지갑, 수학여행 용돈으로 쥐여 준 5만 원이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인 채…”라고 적었다.

글과 함께 올린 사진에는 3년간 바닷물 속에 잠겨 곳곳이 하얗게 얼룩진 가방과 1만 원짜리 다섯 장, 학생증과 카드 등이 담겼다.

임씨는 “평소에도 ‘엄마 사랑해요’를 입버릇처럼 외쳐주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도와주고 엄마의 지친 어깨를 주물러주던 효자 아들 승현이었다”며 “외동아들로 자라며 동물조련사의 꿈을 키웠던 승현이는 미쳐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별이 되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승현 군은 187cm 키에 시원한 외모로 모델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형제 없이 외동으로 자라서인지 동물에 관심이 많아 동물조련사의 꿈도 꿨다고 한다.

수학여행 떠나기 이틀 전 손목을 다쳐 깁스했던 승현 군은 모델, 동물조련사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3년 전 5월 주검이 된 채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다.

임씨는 “대선에 묻혀가지만, 육상으로 올라온 세월호와 함께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미수습가족분들과 계속해서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는 승현이 부모님과 세월호희생자 가족분들께 따뜻한 관심 가져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 유품의 주인인 백 군은 참사가 발생한 지 20일 만인 2014년 5월 6일 부모 품으로 돌아와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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