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축구> 소통 앞세운 신태용식 공격축구, 리우행 결실

<올림픽축구> 소통 앞세운 신태용식 공격축구, 리우행 결실

입력 2016-01-27 03:38
수정 2016-01-27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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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재미있게, 이기는 축구’에 선수들도 신바람

신태용 감독은 현역시절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올림픽 출전 기록은 남아있다.

한국이 28년 만에 자력으로 월드컵 진출에 성공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조별예선에서 모로코와 파라과이, 스웨덴과 무승부에 그쳐 3무로 탈락했다.

신 감독은 예선 세경기에 모두 출전하고서도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K리그에서 99골 68도움이란 기록을 남기면서 레전드로 자리잡은 신 감독에게 어울리는 성적은 아니었다.

그런 신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은 지난해 2월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직후였다.

신 감독은 올림픽 팀을 맡은 뒤 “즐겁고 재미있게, 이기는 축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공격축구를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신 감독은 선수들의 의미없는 횡패스와 백패스를 금지하고 전진패스를 강조했다. 풀백에겐 적극적인 윙 플레이를, 중앙 수비수에게도 공격 전개시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신 감독 부임 후 바뀐 것은 전술뿐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의식도 변화됐다.

신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너무 조용하다. 때로는 자유분방하게 원하는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대화와 소통을 앞세운 신태용식 축구에 선수들도 동화되기 시작했다.

신 감독은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훈련이 끝난 뒤에는 문자메시지로 질문과 응답이 오갈 때도 적지 않았다.

23세 이하인 선수들은 신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선생님을 뜻하는 축약어인 ‘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훈련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과 문제점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해결책을 같이 고민했다.

처음엔 갑자기 달라진 대표팀 분위기에 어색해하는 선수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선수들이 이 같은 변화를 더 반겼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우리 때는 선수들이 감독님하고 대화할 수도 없었어”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큰 변화였다.

신태용 감독의 소통의 리더십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이번 대회 8강에서 요르단에 1-0으로 신승을 거둔 직후였다.

당시 후반전에 보여준 대표팀의 경기 모습에 가장 큰 실망을 한 것은 선수 자신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 직후 라커룸에서 “오늘 경기에서 각자 무엇을 실수했는지 생각해보고 자고 일어난 뒤 말해보자”라며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회복훈련 때 선수들은 각자 무엇을 실수했는지 신 감독에게 이야기했다.

신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선수들이 제시한 답이 내가 생각했던 문제점과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전했다.

경기가 끝난 뒤 바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은 것은 선수들이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신감독의 의도대로 선수들은 스스로 답을 찾았고, 카타르와의 4강전에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공격적인 전술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변화한 신태용호는 8회 연속 올림픽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달라진 올림픽 축구팀에 축구팬들의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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