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무바라크 끝내 무죄… 짓밟힌 ‘이집트의 봄’

‘독재자’ 무바라크 끝내 무죄… 짓밟힌 ‘이집트의 봄’

입력 2014-12-01 00:00
업데이트 2014-12-0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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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정권, 850명 유혈진압에 면죄부… 부정부패 두아들·치안 책임자도 무죄

“학살자가 무죄라면 내 아들이 자살했다는 말입니까?”

이집트 카이로에 사는 무스타파 무르시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아들이 총알을 맞고 쓰러졌던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광장에 나왔다. 무르시처럼 2011년 초 ‘아랍의 봄’ 당시 군경의 살인 진압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시위대의 맨 앞에 섰다. 시위대 규모는 순식간에 2000여명으로 불어났으나 군경이 쏜 최루탄과 물대포에 곧바로 진압됐다. 이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 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시위대는 2011년 봄날처럼 ‘정권 퇴진’을 외쳤지만 재집권한 군부는 이미 철옹성으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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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선고 후 들것에 누워 손 흔드는 무바라크
무죄선고 후 들것에 누워 손 흔드는 무바라크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86)이 29일(현지시간) 카이로 형사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은 후 마아디 군병원에 헬기로 도착, 들것에 누운 채 의료진과 지지자 등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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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시위대… 다시 광장으로
성난 시위대… 다시 광장으로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시위대 유혈 진압 혐의로 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29일(현지시간)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이집트 시민들이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이로 AP 연합뉴스
카이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이날 오전에 있었던 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카이로 형사법원은 ‘아랍의 봄’ 당시 권좌에서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86) 전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시위대 8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혈 진압의 책임을 물어 1심에서 종신형이 선고됐던 독재자를 2심 법원이 사면한 것이다. 담당 판사는 “무바라크가 시위대 사망과 연관이 있다는 혐의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무바라크는 이날 두 아들과 함께 기소된 부정부패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치안 최고 책임자 5명도 무죄가 됐다.

무죄는 예고된 것이었다. 민주항쟁의 산물로 탄생했던 무슬림형제단 중심의 민선정부가 지난해 7월 군부 쿠데타로 전복되면서 이집트는 ‘아랍의 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쿠데타에 항거한 시위대 529명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기도 했다. 반면 시민혁명 도중 시위대 살해 혐의로 기소됐던 경찰관 170여명은 대부분 풀려났다.

쿠데타를 주도한 압둘팟타흐 시시 전 국방장관이 군복을 벗고 대통령에 당선된 지난 6월부터는 옛 군사정권 인사들의 복권이 노골화됐다. 시시 정권에 우호적인 판사들로 물갈이된 법원은 이번에 무바라크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옛 군부 세력과 손을 잡으려는 ‘신군부’의 정치적 계획을 완성해 줬다.

무바라크는 재판 직후 이집트 엘발라드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전혀 잘못한 게 없다. 2012년 1심 선고를 들었을 때 ‘하’ 하고 웃어 버렸다”면서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무바라크는 이번 판결과는 별개의 소송인 공금횡령 사건으로 3년형을 받았지만 교도소 대신 현재 카이로 시내의 한 군 병원에 연금 상태로 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2014-12-0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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