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정치부 기자
먼저 박 의원이 피터스 교수가 있는 앞자리로 다가가 기념품을 전달하는 모습을 촬영한 뒤, 현장에 있던 17명의 국정기획위 관계자들이 전부 앞으로 나가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몸이 불편해 쉽게 일어서기 힘들었던 노교수는 가운데에 앉아 무표정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피터스 교수는 사진 촬영이 모두 끝나고 박 의원이 자리를 떠난 뒤 끊어졌던 설명을 이어 갔습니다.
박 의원은 강의 시작에 앞서 통역 담당자에게 “국정기획위의 정치·행정분과위원장이며 집권 여당의 재선 의원이라고 소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진행을 맡은 전문위원은 교수의 말을 끊을 때 “죄송하다”면서 “정치인들은 원래 이렇게 한다는 걸 교수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피터스 교수가 이해한 것은 특강을 주최한 측의 위원장이거나 집권여당의 재선의원이면 고작 기념사진 때문에 강의를 중간에 끊을 수 있는 한국의 분위기일 겁니다. 최소한 그 설명이라도 끝난 뒤에 양해를 구했으면 어땠을까요. 국회의원이 요청하니 진행자가 강연자의 말을 중간에 끊고서라도 즉각 들어주는 ‘수직적인’ 모습을 보여 준 이날, 공교롭게도 강의의 핵심 주제가 ‘수평성’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필요한 의전을 줄이고 평범한 국민들에게 허리를 굽히는 탈권위를 날마다 보여 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문화가 싹트는 때에 드러난 국회의 구시대적 특권의식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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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