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지원없는 해리 왕자 부부, 홀로서기 어떻게 하나

입력 : ㅣ 수정 : 2020-0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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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국민, 해리 부부 거주 OK, 재정 지원 NO
군복무 경험이 있는 해리 왕자가 헬기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AP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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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복무 경험이 있는 해리 왕자가 헬기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AP 자료 사진

“군주는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가진 영국이 오랫동안 발전시킨 정치 제도다.

캐나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군주는 다스리지도, 거주하지도 않는다.”
명목상의 군주 엘리자베스 2세는 캐나다에 ‘방문’할 뿐 살지 않는 까닭에 생겨난 말이다.

이런 캐나다 국민의 요즘 심경은 다소 착잡하다. 올봄 왕실과 결별하는 해리(35) 왕자 부부가 캐나다에 살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왕자 부부는 ‘왕자’라는 호칭 이외에 왕실로부터 어떤 재정 지원도 받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들은 국민의 지갑에서 나온 돈이 아니라 스스로 벌어 생활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비영리 여론조사기관 앵거스 리드 연구소의 최근 조사결과 부부의 캐나다 거주에 대해 캐나다 국민 절반이 넘는 56%가 개의치 않는다고 답하면서도 약 3분의 2인 73%가 캐나다 정부가 이들에게 재정을 지원하는 것에 반대했다.

토론토·밴쿠버·빅토리아 거주?… 파파라치 없는 곳
해리(왼쪽) 왕자와 부인이 된 당시 여자친구 메건 마클 왕자비가 2017년 교제 사실을 인정하면서 캐나다 토론토의 한 스포츠 경기장에서 관람하는 모습. 로이터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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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왼쪽) 왕자와 부인이 된 당시 여자친구 메건 마클 왕자비가 2017년 교제 사실을 인정하면서 캐나다 토론토의 한 스포츠 경기장에서 관람하는 모습. 로이터 자료 사진

해리 왕자 부부와의 캐나다 거주지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지난 21일 해리 왕자가 캐나다 밴쿠버섬에 도착해 메건 마클(38) 왕자비와 8개월 된 아들 아치 등 가족과 합류했지만, 거주 계획은 불투명하다. 이들의 거주지는 토론토와 밴쿠버, 빅토리아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캐나다에는 유럽과 달리 유명인의 ‘셀럽 문화’가 없어 성가신 파파라치가 유럽보다 훨씬 덜하다. 메건 왕자비는 그동안 영국에서 타블로이드 매체의 괴롭힘에 시달려왔다고 토로했다.

해리 왕자 부부가 밴쿠버에서 침실 6개가 달린 집을 찾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밴쿠버가 메건 왕자비가 태어난 고향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가깝고, 밴쿠버에서 열린 한 자선단체 행사에 메건 왕자비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이 부부의 밴쿠버 거주설에 불을 붙였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인적자원부에서 일하는 서맨서 밀러는 “이 부부가 밴쿠버에 살면 관광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한 삶을 원한 그들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리 왕자와 부인 메건 마클 왕자비의 사진이 들어간 다양한 기념품들 영국 윈저성 근처 한 가게에 진열돼 있다. 로이터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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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왕자와 부인 메건 마클 왕자비의 사진이 들어간 다양한 기념품들 영국 윈저성 근처 한 가게에 진열돼 있다. 로이터 자료 사진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주도인 빅토리아 근처도 거주 리스트에 올랐다. 부부는 빅토리아 근교에 주택을 임대한데다 겨울 날씨가 온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빅토리아에는 영국이 남긴 유산도 많다. 빅토리아는 그러나 이 부부가 밝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은퇴한 이들을 위한 장소라는 게 걸린다.

토론토 역시 해리 왕자 부부가 4년 전 교제를 시작했던 곳이어서 거주지로 주목할 만하다. 특히 마클 왕자비는 결혼 전 수년 동안 이곳에서 살면서 TV시리즈에 출연하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영어권 매체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어서 부부의 매체 활동에 편리하다. 그만큼 언론 노출이 잦아지다 보면 본국 왕실과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발언이 나올 수 있는 점이 께름칙하다.

왕자비, 배우 활동 재개할 수도… 디즈니와 계약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인 해리 왕자 부부가 왕실과 결별하겠다고 밝힌 다음날인 지난 9일 영국 일간 신문 대다수는 이런 기사로 1면을 도배했다. 런던 AFP 연합뉴스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인 해리 왕자 부부가 왕실과 결별하겠다고 밝힌 다음날인 지난 9일 영국 일간 신문 대다수는 이런 기사로 1면을 도배했다. 런던 AFP 연합뉴스

메건 왕자비는 배우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는 최근 디즈니와 음성을 제공하는 ‘보이스오버’ 계약을 맺었다고 캐나다 매체 CBC가 전했다.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에 두 번이나 가는 등 군에서 복무한 적이 있지만, 경력을 쌓은 것은 아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지사 존 호건은 해리 왕자가 BC에 살게 되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것”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해리 왕자 취업은 어떻게...특혜 차단 조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인 해리 왕자 부부가 영국 윈저궁에 있는 세인트 조지 홀에서 지난해 5월 갓 태어난 아들 아치를 앉고 있다. 윈저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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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손자인 해리 왕자 부부가 영국 윈저궁에 있는 세인트 조지 홀에서 지난해 5월 갓 태어난 아들 아치를 앉고 있다. 윈저 AFP 연합뉴스
 

해리 왕자가 직업을 구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제한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들이 영국 왕실 인물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 정치적·사업적으로 특혜를 받고자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막내아들 에드워드 왕자는 1993년 TV 프로그램 제작회사를 시작했다가 별다른 실적을 못 내 2011년 문을 닫았다. 부인 소피 왕자비는 1999년 에드워드 왕자와 결혼한 후 홍보회사를 세웠다. 2년 뒤 소피 왕자비는 이 회사가 사업을 할 때 부유한 아랍 왕자인 척했다는 보도로 당황해 했다. 소피 왕자비가 왕실 지위 덕분에 유망한 고객들을 더 크게 홍보할 수 있다고 넌지시 알렸다는 것이다. 결국, 빚에 쪼들려 회사는 문을 닫았다.

해리 왕자가 캐나다에서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캐나다 당국의 허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토론토에 있는 이민법 변호사인 켈리 골드소프는 영국과의 포괄적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당국의 승인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해리 왕자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면 캐나다에 문화적·경제적 이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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